미국 의료계 노조 7만5000명, '사상 최대' 파업… "코로나19 좌절감 끓어올랐다"

입력
2023.10.05 20:00
'환자 1270만 명 이용' 카이저퍼머넌트 노조
사흘간 파업 돌입... "노동 환경 극도로 열악"
철도·배우·작가·자동차 이어 노동 쟁의 확산

미국의 대형 비영리 보건의료기관인 ‘카이저퍼머넌트’의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했다. 미국 의료계 사상 최대 규모 파업으로 평가된다. 최근 할리우드 작가·배우 노조, 전미자동차노조(UAW) 등의 파업으로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힌 상황에서, 또 하나의 기록적 파업이 일어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부터 이어진 노동자들의 좌절감이 끓어오르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1993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규모 파업"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카이저퍼머넌트 노조는 캘리포니아·콜로라도·오리건·워싱턴주(州)에서 이날부터 사흘간 파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버지니아주와 수도 워싱턴DC에선 이날 하루 동안만 파업을 벌였다.

파업 참여 인원은 총 7만5,000명으로, 199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규모다. 미국 8개주에서 병원 39곳과 진료소 622곳을 운영하는 카이저퍼머넌트는 약 1,270만 명의 환자가 이용하고 있다. 의사 2만4,000명, 간호사 6만8,000명, 기술·사무직 21만3,000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 중 파업의 주축은 기술·사무직 직원들이며, 간호사 일부도 참여했다. 의사는 동참하지 않았다.

NYT는 “일부 진료소와 약국이 문을 닫거나 긴급하지 않은 시술이 연기될 수 있다”고 전했다. 노조는 협상이 결렬되면 다음 달에도 파업에 나설 계획이다.


"혹사당해 인력 이탈, 인력 적어 직원 혹사"

대규모 파업의 발단은 2020년부터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이다. 당시 의료계 노동 환경이 극도로 열악해지면서 대규모 인력 이탈이 발생했다. 그러나 팬데믹이 종식된 지금까지도 인력 보충·급여 인상 등 처우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직원 탈진-이탈-노동환경 악화'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카이저 직원들은 NYT에 "정말 힘들었던 팬데믹 기간, 팀 직원이 5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직원들은 '번아웃'(신체·정신적 탈진)됐는데, 환자 입원율은 높아져 실수가 잦아졌다" 등 고충을 토로했다. 노조는 최근 6개월간 협상에서 향후 4년간 임금 24.5% 인상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12.5~16% 인상안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접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실제 미국 의료계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돼 왔다. 올해 1월 미국 뉴욕시 병원 2곳의 간호사 7,000명이 사흘간 파업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이후 캘리포니아·일리노이·미시간주 등에서도 의료계 파업이 잇따랐다. NYT는 “의료 종사자들의 절망이 전국적으로 분출하고 있다"고 짚었다.

의료계로까지 번진 파업 물결은 미국 노동계의 위기감을 보여 주고 있다. 최근 고물가에 노동 시장 경색까지 겹치자, △미국 최대 배송업체인 UPS 노조 △철도 노조 △할리우드 배우·작가 노조 △UAW 소속 '빅 3' 자동차기업 노조 등이 대규모 파업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는 "올해에만 44만5,000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참가했는데, 2000년 이후 최다 인원"이라고 분석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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