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 <3> 중년 전업주부의 이혼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매년 법원에 접수되는 가사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또 가사소송의 70% 이상은 이혼청구 사건이다. 모든 소송과 비교해도 이혼소송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사람 중 40~60대가 가장 높은 비율(약 60%)을 차지한다. 그렇게 이혼소송은 우리의 삶에 가장 가까이 다가와 있는 소송인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근 다룬 이혼소송 사례를 소개한다. 결혼기간이 20년에 이른 중년여성이 찾아왔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부부는 자녀들을 명문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잘 키웠고, 남편도 사업에 성공해 남편 명의로 건물을 매입할 정도가 됐다. 그녀는 평생 전업주부로, 양육과 집안일을 담당해 왔다. 겉보기에는 ‘성공한 남편, 똑똑하고 바르게 자란 자식들을 둔, 누구에게도 부러움을 사는 사모님’이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한 달 전 남편이 골프채로 내려쳐서 갈비뼈가 부러졌다. 부러진 갈비뼈 때문인지 아픈 마음 때문인지 상담 내내 갈비뼈 쪽을 움켜쥐며 흐느껴 울었다. 비통한 가정사는 이뿐이 아니었다. 남편은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모욕적 내용의 폭언을 일삼았다. 더욱 비통한 건 남편 폭압을 피해 도피할 곳이 없었다는 점이다. 남편 폭력이 시작됐을 무렵, 친정으로 피신해 갔더니 친정 부모님은 “죽어도 네 남편한테 돌아가서 그 집 귀신이 돼라”며 돌려보냈다.
그녀를 더욱 위축시키는 건 아이들 생활비와 교육비 부담이다. 전업주부이기에 이혼 후 아이들을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아이들을 키우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남편은 기댈 곳 없는 그녀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적반하장 격으로, “재산 형성에 기여한 게 있느냐. 이혼해서 몸만 나가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녀가 한 건 아이들 돌보고, 집안일을 했을 뿐 남편 말대로 숟가락 하나라도 그녀가 돈 벌어서 산 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어렵게 이혼을 결정하고, 내게 요청한 건 이랬다. “변호사님, 제가 번 돈은 없지만 앞으로 아이들 키울 돈만큼만은 받게 해 주세요.”
전업주부. 남편 말대로 숟가락 하나 그녀의 돈으로 산 건 없다. 그러나 가정에 대한 헌신의 흔적은 통장에 찍힌 유형의 돈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이루게 해 준 무형의 헌신이다. ‘아침마다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를 준비해 주고, 빨래, 청소, 식사준비, 아이들 방과후 교육준비, 명절 차례 등 가정대소사 준비 등’ 눈에 보이지도 않고, 현재 어떠한 형태로도 남아 있지도 않은 무형의 것을 해 온 것이다. 남편 주장대로 몸만 나가야 하는 걸까. 그녀가 해 온 헌신은 무형의 것인데 그걸 법 앞에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은 부부가 함께 “형성, 유지, 증식에 협력”한 재산에 대해서, 그 재산의 “형성, 유지, 증식”에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 이른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5:5, 6:4 등 재산분할비율(기여도)을 정해 분할한다. 필자를 찾는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부분은 “재산을 형성, 유지, 증식에 협력”을 본인이 직접 돈을 버는 경제적 기여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확실히 말하지만, 그것은 100% 잘못된 ‘카더라 정보’이다.
재산분할에서 말하는 ‘재산 형성, 유지, 증식에 협력’한 것은 경제활동만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양육한 것, 가사노동(명절 차례 등 가정대소사 준비, 식사준비, 청소, 빨래 등 모두 포함) 등 무형의 헌신도 포함된다. 직접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재테크(부동산 분양), 시댁가족 봉양(시부모 등 시댁 가족과 동거 또는 돌봄, 명절 제사 준비, 병수발 등), 아이들 양육 전담 등 헌신한 점이 있다면 이는 명백히 기여도에 반영된다.
여기서 많은 전업주부들이 그걸 어떻게 증명하냐고 물어보신다. “제가 부동산 알아봐서 매수한 거고, 시어머니 치매 병수발도 제가 다 했어요. 아이들 학교 진학도 제가 다 정보 모으고 준비했어요. 그런데 증거가 없어요. 저 지는건가요?” 나는 대답한다. “평생 살면서, 그런 증거를 다 남겨놓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법은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에게 자세히 진술해주시면 그걸 법원에 잘 설명하면 돼요. 그리고 직접 자세히 진술할 수 있도록 법원에서는 ‘가사조사’라는 절차를 진행할 거예요.”
실제로 법원은 이혼소송에 필요한 경우 계좌내역 등 재산사항을 조회하게 해 준다. 그것으로 재산분할 기여도를 입증하는 단초를 찾는다. 이혼전문변호사로서의 재산내역 분석은 그 능력의 꽃이다. 이혼전문변호사로서 수천 개의 재산내역을 검토 분석하며 깨달은 것은, ‘계좌내역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 보인다’는 것이다. 돈은 사람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흐른다. 계좌내역에는 부부의 인격이 담겼다. 월급을 제때 보내지 않거나, 월급 일부만 아내에게 보내는 남편의 계좌내역, 남편이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데도 매달 생계를 위해 보험약관대출이라도 감행하는 아내의 계좌내역, 골프장과 유흥주점에 다닌 남편의 계좌내역과 같은 날 아이들 학원 특강비, 병원비, 마트 비용이 결제된 아내의 계좌내역을 비교하다 보면 모든 상황은 쉽게 정리된다.
그것이 바로 “전업주부가 재산 형성, 유지, 증식에 협력”한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전업주부의 재산분할 기여도를 30%에서 60% 이상씩 인정받아 왔다. 쉽게 말해 부동산 절반, 회사 절반이 아내 몫이다.
많은 전업주부들의 또 다른 걱정 중 하나는 “경제력이 없으면 친권 및 양육자로 지정될 수 없는 건가요?”이다. 물론 답변은 ‘아니다’이다.
법원의 친권 및 양육자 판단기준은 경제력이 아니라 ‘자녀의 복리’이다. 자녀와 안정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해 왔고, 양육을 전담해 왔다면 아이를 키울 수 있다. 아이 입장에서, 엄마가 나를 키우느라 돈을 벌지 못했다는 이유로 여태껏 자신을 사랑으로 케어해 준 엄마와 살 수 없다면 얼마나 비극인가. 법원은 전업주부가 경제력이 없다 하더라도 자녀와 안정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해 왔고 양육을 안정적으로 전담해 왔다면 아이의 친권 및 양육자로 지정한다. 그것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빠는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고, 면접교섭을 해야 한다. 법원은 그렇게 엄마아빠가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가 부모 양쪽의 보호를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커갈 수 있도록 부모의 상호 협력을 촉구한다.
전업주부는 양육비를 통해 아이를 양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법원은 재산분할에 있어서도 ‘부양적 요소’를 감안한다. 이혼 후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이 있는 경우 ‘부양적 요소’를 감안하여 재산분할을 좀 더 여유 있게 판단하는 것이다. 더욱이 요즘 이혼소송에서는 양육비에 대해 “대학 학비도 일정 부분 부담” 쪽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양육비 지급의무는 미성년자까지만 있다(18세 11개월까지). 하지만 아이가 19세가 된다고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다 보니 법원에서는 대학 학비, 결혼 자금도 부모가 쌍방 부담하는 것으로 정하여 아이의 양육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결정을 하곤 한다.
법은 이혼을 할 때, 그간 가정을 위해 희생해 온 인생을 보호하고 존중한다. 필자는 이혼전문변호사이자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점은 “전업주부가 가장 어려운 직업이다”는 것이다. 직장인은 퇴근이라도 있지, 전업주부는 24시간 풀타임 근무다. 법은 전업주부의 그 고귀한 헌신을 귀하게 평가하여 재산분할을 결정한다. 그것이 구체적·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소개한, 이혼을 통해 인생의 보호가 필요한 중년의 전업주부. 이혼전문변호사인 나는 그분이 살아온 인생을 존경하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축복하면서 말씀드린다. “전업주부는 정말 어려운 직업이에요. 그 어려운 전업주부도 해내셨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든 견디고 해 나가실 수 있어요”라고 말이다. 과거의 슬픔을 공평과 정의에 부합하게 매듭짓고, 평온한 일상을 찾아갈 그녀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