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50년까지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쓰자는 글로벌 캠페인 RE100 이니셔티브(RE100)에 가입한 ①국내 주요 기업 세 곳 중 한 곳은 올해 재생에너지 사용 인증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②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 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은 가입 1년 반이 지나도록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재생에너지 사용량이 없었다. 또 ③지난해 RE100 참여를 선언한 삼성전자의 국내 사업장이 지난해 사용한 재생에너지는 9%에 불과해 생색내기란 비판이 나온다.
5일 본보가 더불어민주당 김경만 의원을 통해 입수한 한국에너지공단의 '글로벌 RE100 기업의 이행수단별 재생에너지 사용량'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RE100 가입 국내 기업 32개사 중 21개사만 올해 재생에너지 사용을 인증받았다. 11개사는 재생에너지를 쓰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쓰지 않았거나 썼더라도 외부 검증을 받지 않았던 셈이다. 국내에서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인증하는 기관은 에너지공단뿐이다. RE100을 주관하는 단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는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100% 쓸 때부터 실제 사용 여부를 검증하기 때문에 외부 기관이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여부를 점검하는 방법은 에너지공단 인증이 유일한 셈이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이름을 올린 RE100은 1년에 0.1테라와트시(TWh) 이상을 쓰는 '전력 다소비' 기업만 가입할 수 있다. 가입 1년이 지나면 매년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을 보고하는 등 조건도 까다롭다. 그럼에도 캠페인에 동참하겠다는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400곳이 넘는다. 한국 기업들도 2020년 6개사, 2021년 14개사, 2022년 27개사, 올해 32개사가 동참을 선언했다. RE100 가입이 무역장벽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2021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주관으로 배정환 전남대 교수 등이 작성한 'RE100이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이 RE100에 참여하지 않으면 주요 수출 업종인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 산업의 수출액이 각각 15%, 31%, 40%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RE100에 참여해도 예상되는 수출 감소 폭(8%, 9%, 22%)의 두세 배에 달한다.
그러나 고려아연(2021년 가입), 인천국제공항(2022년), 현대차(2022년), 기아(2022년), 현대모비스(2022년) 등은 RE100에 가입하고 단 한 번도 재생에너지 사용을 인증받지 않았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현재는 높은 전력단가로 인한 원가부담으로 신재생에너지를 별도로 구매하고 있지 않다"며 '재생에너지 생산설비 투자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인천공항 관계자들은 "올해 (재생에너지 사용) 계획을 세우고 자가 발전시설을 지어 앞으로 인증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당장 발전사(녹색프리미엄)와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재생에너지 인증서·REC구매)로부터 웃돈을 주고 재생에너지를 쓸 수도 있지만 자체 발전시설을 지어 재생에너지를 쓰겠다는 '계획'만 내놓은 셈이다. 2020년 RE100에 가입한 SKC는 지난해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인증받아 공개했지만 올해는 하지 않았다. 삼성전기와 롯데웰푸드는 올해 RE100에 가입해 재생에너지 사용 방안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답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내년 초 1년치 사용량을 인증받겠다고 밝혔다.
32개사 중 8개사는 재생에너지 사용을 인증받고도 사용량 전체 또는 일부를 공개하지 않았다. 2021년 RE100에 가입한 KB금융은 지난해 자체 발전을 통해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인증받았지만 공개하지 않았다. KB금융이 2022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밝힌 재생에너지 자체 발전량은 137만 킬로와트시(KWh). 문제는 자체 발전량 중 에너지공단에서 얼마나 인증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전부 인증받았더라도 지난해 KB금융 연간 전력구매량의 0.6%에 그친다. SK텔레콤, LG이노텍, 롯데칠성 등도 인증받은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비공개'하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알리지만 얼마만큼을 국내에서 인증받은 건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한편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도 새로 밝혀졌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녹색프리미엄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사고 사용·인증량을 공개했지만 연간 국내 전력사용량을 알지 못해 국내 사업장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파악할 수 없었다. 김경만 의원이 한국전력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국내에서 2만1,731GWh를 썼다.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사용량 인증이 195만9,000메가와트시(MWh)로 전력 사용량 중 9%를 재생에너지로 쓴 셈이다. 이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전 세계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로 바꾼 전환율(31%)의 3분의 1 수준이다. 국내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올해 8월 말 기준 15.4%(전체 전력구매량 1만3,457GWh)로 늘었다.
RE100 가입 기업들이 올해 8월 말까지 사용한 전력 중 재생에너지 사용을 인증받은 비율이 20% 이상인 곳은 7개사, 30% 이상인 곳은 5개사, 절반을 넘긴 곳은 3개사였다. 32개사의 평균 재생에너지 비율은 13.8%(비공개, 미인증은 0으로 처리)로 지난해 8.6%에서 올랐다.
기업들이 RE100에 가입하고도 재생에너지를 적게 쓰거나 쓰지 않는 이유는 실현 방안 없이 가입 선언부터 한 측면이 크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지난해 2월 가입 당시에는 1년 뒤 이행계획서를 내고 준비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CDP 한국위원회 사무국인 한국사회투자포럼의 김태한 수석연구원은 "가입 기업이 늘면서 이행계획서 제출 의무를 없앴다"며 "가입하고 1년이 지나고 탄소감축 보고서를 내면 되는데 애초부터 있던 의무"라고 답했다.
민간단체가 RE100 캠페인을 이끌다 보니 기업들을 관리 감독하는 데 한계도 있다. 김 수석연구원은 "재생에너지 사용을 100% 달성한 기업만 검증하고 이전까지는 기업이 제출한 연간 재생에너지 사용 보고서를 그대로 공개한다"며 "다른 나라도 같은 기준으로 검증하는데 한국은 아직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지속적으로 달성한 기업이 없어 검증한 곳도 없다"고 밝혔다.
김경만 의원은 "RE100 가입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사용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