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62년 만에 정치인 출신으로는 처음 한국전력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김동철 사장이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정부에 4분기(10~12월) 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과 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으로 구성되는데 9월 21일 연료비조정요금만 동결해 4분기 전기요금이 오를 가능성은 남아 있다.
김 사장은 4일 세종시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에서 2021년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하면서 당초대로라면 올해 45.3원을 인상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인상 분은) 그에 못 미친다"며 "이것이라도 올리려면 25.9원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상반기 한전이 발표한 자구책에 이어 강도가 더 높은 두 번째 자구안을 내놓고 국민의 공감을 얻겠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이 제시한 전기료 인상안의 근거는 이렇다. 지난해 한전은 32조7,000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적자를 낸 뒤 국회에 사채 발행 한도 증액을 요청하며 '경영정상화 방안'을 제출했다. 여기에는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과 환율, 누적 적자 등을 감안하면 kWh당 51.6원 인상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중 에너지 가격 폭등에 따른 기준 연료비 인상이 45.3원,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 등에 쓰일 기후환경요금 인상이 1.3원,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이 5.0원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기준연료비가 1분기(1~3월) 11.4원, 2분기(5~6월) 8원 오르는 데 그쳐 아직 25.9원이 추가로 올라야 한다는 게 김 사장의 주장이다. 기후환경요금은 1분기 kWh당 1.7원 인상됐다.
봄과 여름에 걸쳐 국제 에너지 가격이 떨어지며 5월부터 한전이 전력을 밑지고 파는 '역마진' 현상이 일부 해소됐지만 송‧배전 시설 등 전력 인프라를 관리, 운영하려면 kWh당 22원 이상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7월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판매 단가에서 구입 단가를 뺀 마진은 kWh당 8.3원에 그친다. 경기 용인시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 산업에 필요한 전력망을 깔 때도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한전 관계자는 "용인 클러스터 전력망에 필요한 재원은 3조, 4조 원 대"라며 "한전이 전부 부담하기보다 기업과 협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그러면서도 "한전의 경영 혁신과 내부 개혁 없이 전기요금 정상화만 말씀 드릴 수는 없다"며 "특단의 2차 추가 자구안을 2, 3주 안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는 "상상할 수 없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자산 매각을 해도 전부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게 일부 지분만 매각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한전이 경영정상화를 이룰 때까지 한국에너지공과대학에 내는 출연금 규모도 줄일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김 사장은 "(한전이) 에너지공대를 지원‧육성하는 건 관련법에 규정돼 있지만 그것은 한전이 정상 상황일 때 얘기"라며 "부채가 쌓여 한전 임직원이 임금까지 반납하는 상황에서 에너지공대에 약속대로 지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학사 일정이라든가 연구 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지원되도록 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