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환율·주식·채권시장이 '트리플 약세'를 보인 것은 금리 인하 기대가 급격히 꺾였기 때문이다. 시장엔 "연말 미국 경제에 침체 신호가 켜지면 환율·금리 상승세가 주춤할 것"이라는 낙관과, "그럼에도 투심을 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이 교차한다.
이날 세 시장은 모두 '기록'을 경신했다. 미 달러 가치가 지난해 11월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원·달러 환율이 연고점(1,363.5원)으로 마쳤다. 원홧값 하락은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주식 손절매로 이어졌다. 코스피지수는 올 들어 두 번째로 크게(-2.41%) 하락하며 2,400선을 겨우 지켰다. 16년 만 최고치를 찍은 미국 국채 10년물을 따라 한국 국채 2년물도 장중 0.5%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고금리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것"이라는 공포가 '공황(패닉) 장세'를 불렀다는 분석이다. 발단이 된 것은 지난달 열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다. FOMC는 당시 '탄탄한 경제 성장세'를 이유로 "내년 말까지 현재의 5%대 금리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후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의 "기준금리 7%" 전망,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들의 추가 인상 지지 발언, 전날 미국 노동부의 "채용 공고 증가"(8월 구인·이직보고서·JoLTs) 발표가 이어졌다. FOMC 이후 불과 6거래일 동안 환율이 33원,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0.3%포인트 급등한 이유다.
설상가상 미국 정치의 불확실성도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분석이다. 예산안 논의가 다음 달로 미뤄졌고, 그 과정에서 권력 서열 3위 하원의장 해임안이 미 의회 역사상 처음 가결됐기 때문이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누가 차기 하원의장이 되든 예산안이 한 번에 처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예산안 문제의 난항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미국 정부는 일시 업무 중단(셧다운)에 돌입한다.
환율 상승 추세는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속도는 더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미국 내년 성장률이 올해만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근거다. 이달 학자금대출 상환이 재개돼 가계 소비 여력이 줄어들 것이고, 구인 증가 건수 대부분이 전문직에 한정돼 추후 하향 수정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이 같은 이유로 "지난해처럼 1,400원 상향 돌파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시간 6일 발표하는 고용지표, 12일 발표하는 물가지표가 이 같은 전망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금리도 마찬가지다. 미국보다 낮은 성장세, 미국보다 낮은 물가, 미국과 달리 재정확장에 신중하다는 점에서 시장금리의 미국 민감도가 낮아질 것이란 예측이 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에 더해 "미국이 11월 금리 인상 여부를 재고 있지만, 우리는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따라 올리기 난감한 상황"이라며 통화정책도 금리 차별화 근거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날 채권시장은 "패닉에 따른 과매도로 쏠림이 과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심리'이기에,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경고도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기 기대감이 꺼진다는 것은 투자 기대감도 꺼진다는 얘기"라며 "연준이 온전히 금리 인하로 돌아서 경기를 부양하기 전까진 시장을 긍정적으로 볼 요인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