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삐약이’ 신유빈 앞세워 부활한 한국 탁구, 이제 파리로 간다

입력
2023.10.0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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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복식서 21년 만에 금메달 수확
총 8개 메달로 2002년 이후 최고 성적

한국 탁구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1년 만에 최고 성적을 거두며 부활했다.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꽉 막혔던 금맥이 마침내 터지는 등 전 종목에서 총 8개 메달(금 1·은 2·동 5)을 손에 넣고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금메달 2개를 포함해 총 8개를 따냈던 부산 대회에 버금가는 성과다.

그 중심엔 처음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삐약이' 신유빈(대한항공)이 있었다. 19세 신유빈은 31세 전지희(미래에셋증권)와 호흡을 맞춰 여자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0년 베이징 대회 남자 단체전 이후 33년 만에 성사된 남북 대결이 부담될 법도 했지만 상대를 압도하며 2002년 부산 대회 여자복식 석은미-이은실 이후 21년 만에 금메달 쾌거를 이뤘다. 앞서 신유빈은 여자 단체전과 혼합복식, 여자단식에서 모두 동메달을 획득했다. 혼자 가져간 메달만 4개다.

여자복식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도 유의미한 발전을 이뤘다. 남자단식에서는 장우진(미래에셋증권)이 동메달을 수확했고, 남자복식에선 장우진-임종훈(한국거래소)이 은메달을 건졌다. 남자 단체전은 은메달, 혼합복식은 임종훈-신유빈, 장우진-전지희가 동메달을 보탰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은 1·동 3), 2014년 인천 대회(은 1·동 3)와 비교하면 눈부신 반등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탁구는 세계 최강 중국의 대항마로 꼽혔지만 이후 내리막을 탔다. 중국과 실력 격차는 점점 커졌고, 중화권 강자들에게도 밀리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신유빈이라는 에이스가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는 동시에 선배 선수들의 뜨거운 땀방울이 더해지면서 값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대한탁구협회의 노력도 빛을 봤다. 협회는 2020 도쿄올림픽 뒤 국가대표 선발 방식에 변화를 줬다. 추천 전형을 없애고 실력 순으로 대표선수를 뽑았다. 공정하게 국가대표 선발전 성적으로만 선수를 선발하니까 선수들 사이에서는 경쟁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신유빈은 아시안게임이 코로나19로 연기되지 않았다면 지난해 손목 수술 여파로 태극마크를 달 수 없었지만 1년 미뤄지면서 선발전을 뛸 수 있었다. 신유빈은 금메달을 획득한 뒤 “부상이 있어서 사실 난 이 자리에 없었을 수 있다”며 “운이 좋게 행운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무한경쟁 방식은 국내 일반 대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학생부와 일반부 사이의 칸막이를 제거해 초등학생이 중학생에게, 고등학생이 일반부 선배들에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실업 선수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됐고, 후배 선수들은 선배를 넘고 싶은 동기부여가 생겼다.

유승민 탁구협회장이 공약 사업으로 출범시킨 한국프로탁구리그(KTTL) 역시 좋은 성적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단발성 토너먼트가 아닌 여러 경기를 소화하는 리그제로 선수들이 많은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한국 탁구는 아시안게임의 기세를 내년 파리올림픽까지 이어간다는 각오다. 이에 금의환향 대신 또 다른 국제대회가 펼쳐지는 해외 원정길을 택했다. 대다수 대표팀 선수들은 중국, 오만, 튀르키예 대회를 연이어 소화하고 오는 24일께 귀국할 예정이다.

항저우 = 김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