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칠레한국대사관 고위공무원이 부하 직원의 사생활에 개입했다가 교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대사관은 2016년 실무급 외교관이 현지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사실이 발각돼 국격을 실추시키고 칠레와의 외교문제로 번져 물의를 빚은 곳이다. 외교부의 허술한 재외공관 관리감독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3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외교부는 올 초 주칠레대사관 고위공무원 A씨가 성비위와 갑질을 저질렀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이에 A씨를 귀임조처하고 본부 차원에서 감사를 시작했다. A씨는 업무가 아닌 사적인 이유로 3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를 남기며 부하 직원을 괴롭힌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필요한 조치가 이뤄진 사안"이라고 밝혔다. A씨는 7월 교체됐다.
쟁점은 A씨가 부하 직원의 사생활에 개입하려 한 행위가 성비위와 갑질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외교가에서는 "아무리 업무상 친밀한 관계에 있다고 해도 사생활 문제를 두고 수십 통이 넘는 전화를 하는 것은 상식 밖의 행위"라는 지적이 나왔다. 외교부 관계자는 "성희롱 등에 대해서는 중대행위로 분류하고 무관용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해 왔다"며 "관련 법령에 따라 엄정히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외교부는 재외공관에서의 성희롱·성폭력 의혹이 인지되면 즉각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조치를 한 뒤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고충심의위원회를 연다. 위원회에서 성희롱·성폭력 여부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면 필요할 경우 징계 절차를 밟는다. 고위공무원은 중앙징계위원회에 징계 의결을 요구하는 절차를 밟는다.
주칠레대사관은 2016년 실무급 외교관의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한·칠레 관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전례가 있다. 당시 현지 언론에 성추행 장면 동영상이 고스란히 공개돼 논란이 더 컸다. 피해 여학생의 제보를 받은 칠레 방송사는 대사관에서 공공외교를 담당하던 참사관 B씨가 다른 여성에게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포착했다. 외교부는 이후 B씨를 파면 처분하고 형사고발했다. B씨는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이후 외교부는 공직기강 확립을 위한 대대적인 혁신을 약속했다. 하지만 재외공관에서 외교관의 품행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외교부는 2019년과 2020년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과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처리 지침'을 각각 마련했지만 그뿐이었다. 실제 2021년 성희롱 논란으로 총영사에 대한 귀임처분이 이뤄진 주시애틀총영사관의 경우, 같은 피해자가 직장 내 괴롭힘과 2차 피해를 신고해 외교부 감사팀이 올 상반기 현장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