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해상교량 지나 아찔한 '천공의 도로' 드라이브

입력
2023.10.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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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터카로 에히메와 히로시마 여행

렌터카를 이용하면 유명 관광지 외에 그 나라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일본 히로시마와 에히메현의 섬과 산악에는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비경이 숨어 있다. 운전석과 도로 주행 방향이 한국과 반대라 적응이 필요하지만 익숙해지면 크게 어렵지 않다.

혼슈 서남부 히로시마현에서 시코쿠 에히메현으로 가는 가장 빠른 도로는 세토 내해의 여섯 개 섬을 연결한 7개 해상교량을 통과한다. 히로시마현 가장 남쪽 이쿠치 섬의 ‘희망의 언덕(The Hill of Hope)’은 독특한 조형물로 눈길을 끄는 곳이다. 고산지(耕三寺) 사찰 뒤편 언덕 꼭대기가 눈부시게 하얀 대리석으로 덮여 있다.



히로시마현 출신 조각가가 1989년부터 12년에 거쳐 이탈리아에서 대리석을 수입해 완성한 조각 정원이다. 광명의 탑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흰사자의 탑, 바람의 사계, 미래의 불꽃 등 12개 작품마다 여행객의 인증사진 배경이다. 전통 사찰의 조형물로는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오히려 신기하다. 미로 같은 동굴 안에 1,000개의 불상을 모신 고산지의 ‘천불동’도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두 개의 다리를 건너 에히메현 오시마 섬에 도착하면 바다 풍광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기로산전망공원이 있다. 해발 308m 전망대에 서면 구루시마해협대교와 주변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특히 세토 내해로 해가 질 무렵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 바다 건너 시코쿠의 이마바리시 풍경이 아스라이 보인다.


맑은 날에는 서일본 최고봉인 이시즈치산까지 조망되는데, 이 봉우리를 중심으로 에히메와 고치현의 경계인 해발 1,300~1,700m 산줄기에는 ‘UFO라인’이라는 고산도로가 개설돼 있다. 능선 바로 아래로 이어지는 24㎞ '천공의 도로'다.

UFO라인까지 가는 산길은 차량이 운행하는 도로가 맞나 싶을 정도로 폭이 좁고 경사가 심하다. 게다가 꼬불꼬불 구절양장이어서 운전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한국인에겐 지나치게 협소해 보이는데, 좁은 도로에 익숙한 현지 차량은 잘도 비켜간다. 오토바이와 자전거 행렬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런 길로 1시간가량 천천히 차를 몰면 드디어 UFO라인이다.



발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벽인데 조릿대로 덮인 고산 능선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것처럼 모든 것이 비현실처럼 느껴진다. UFO라인이라 불린 이유는 이질적인 풍광이 아니라 도로가 개설되고 찍힌 사진 한 장 때문이다. 한 직장인이 등산 중 촬영한 사진에 UFO로 추정되는 물체가 산봉우리 위로 날아가는 듯한 모습이 찍혔다. 언뜻 필름 상의 먼지 같이 보이는데 지역신문에 실린 이후 이 천공의 드라이브 코스는 UFO라인으로 불리게 됐다. 워낙 높고 험한 길이라 11월 말부터 이듬해 4월 중순까지 동절기에는 폐쇄된다.

에히메현 서쪽 '시코쿠카르스트'도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곳이다. 고치현과 경계를 이루는 해발 1,000~1,500m 고산에 약 25km에 걸쳐 펼쳐지는 평원으로 일본 3대 카르스트 중 하나로 꼽힌다. 석회암 침식으로 형성된 카르스트지형은 국내에선 주로 동굴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이곳에는 특이하게도 지표면에 노출돼 있다.




UFO라인 가는 길과 비슷하게 구불구불한 좁은 도로를 따라 오르다 능선에 닿으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고 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대지를 가로지르는 도로 양편으로 억새가 일렁거리고, 초지에서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텐트를 펼친 여행객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고원의 평화로움을 즐긴다. 석회암 주변 산책로를 걸으며 색다른 풍광에 빠져도 좋은 곳이다. 이곳 역시 겨울에는 폐쇄되고 3월 중순께 통행이 재개된다.

렌터카로 두 지역을 여행하려면 히로시마공항에서 차를 빌려 마쓰야마공항에 반납하거나 그 반대도 가능하다. 제주항공이 인천공항에서 마쓰야마까지 주 5회, 히로시마까지 주 3회 왕복 운항하고 있다. 일정을 잘 잡으면 대중교통으로도 두 도시를 한꺼번에 여행할 수 있다. 히로시마항에서 마쓰야마항까지는 페리로 약 70분이 걸린다.

마쓰야마=글·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