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민심 르포]"죄 없는 사람 인자 그만 괴롭혀… 가결파 의원도 안고 가야”

입력
2023.10.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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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광주 찾아가 민심 들어보니]
'정치수사'에 성난 민심… "총선도 이재명"
R&D 삭감·한일 관계 등에 비판여론 집중
2030 "정책만 좋다면 여당을 찍을 수도"


편집자주

명절 민심에는 여론이 응축돼 있다. 특히 이듬해 선거를 앞둔 추석 민심은 승패의 가늠자 역할을 해왔다. 이에 부산과 광주를 찾아 영호남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내년 총선은 이제 6개월 남았다.


"죄 없는 사람을 고로코롬 괴롭혔으믄 인자 그만 해야재잉"


1일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만난 최수근(67)씨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묻자 이같이 말했다. '구속영장 기각과 무죄는 다른 것 아니냐'고 재차 물어봤지만, 최씨는 "나도 그건 아는디 지금까지 200번 넘게 압수수색했다 안 허요. 근디 나온 게 뭐시 있당가. 대선 끝나고 이때까지 못 밝혔으면 그건 검찰이 정치수사를 했단 소리지"라고 목소리를 더 높였다.

광주 민심이 들끓고 있었다. 추석 연휴 직전에 나온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 소식은 엿새간의 긴 연휴가 무색할 정도로 광주 민심을 꽉 붙잡고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이 대표에게 압도적 표(84.82%)를 몰아준 광주는 1년 반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 대표를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의 '심장'이라 불리는 광주를 찾아 바닥 민심을 살펴봤다.



"이재명 빼면 인물 없어"… 선호도 1위 '굳건'

이 대표에 대한 광주 시민들의 지지는 흔들림 없었다. 동구 금남로공원에서 만난 박영길(78)씨는 "지금 민주당에는 이재명 빼면 인물이 없다"며 "내년 총선까지 이재명 중심으로 쭉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초상화가 그려진 배지를 단 70대 노인도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아무도 없다"고 거들었다. KBS광주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정례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대선 이후 이 대표는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는 물론 '호남 지역 대표 지도자'에서도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시민들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가결파' 의원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의외로 이들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문자 테러'를 일삼으며 강도 높은 징계를 요구하는 이 대표 강성 지지층(개딸)과는 결이 다른 셈이다. 동구 남광주시장에서 30년간 수산물 장사를 해온 김모(76)씨는 "나도 '민주당 골수 지지자'지만 다른 의견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며 "이 대표가 큰 정치인이 되려면 비명계 의원들도 껴안고 가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단식 왜 했나 몰라… '방탄단식' 비판도 일리"

'정부·여당이 잘한 분야'를 묻자 광주 시민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구 동명동 카페거리에서 만난 대학생 신지혜(23)씨는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깎는다고 들었다"면서 "가뜩이나 지방 일자리도 부족한데 세상에 어떤 정부가 미래를 위한 투자를 막느냐"고 따져 물었다. 남광주시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60대 상인은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다는데 한마디도 못 하는 정부가 어디 있느냐"며 "해외 나가서 세금 쓰지 말고 경제나 잘 살렸으면 좋겠다"고 혀를 찼다. 윤석열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에서 '잘하고 있다'는 10% 안팎, '잘못하고 있다'는 80%가 넘는 여론조사(KBS광주) 결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의 대여투쟁에 대해서는 마뜩잖은 분위기였다. 특히 이 대표의 '24일간 단식투쟁'을 두고는 "왜 했는지 모르겠다"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양동시장에서 2대째 신발가게를 운영 중인 김모(45)씨는 "제1야당이 할 수 있는 게 단식밖에 없었을지 의문"이라며 "대통령 사과 등 불가능한 요구조건을 내건 걸 보면 '방탄단식'이라는 비판도 일리는 있다"고 끄덕였다.



지역 국회의원 모르지만 "이준석은 인상적"

민주당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광주이지만, 젊은 세대들의 경우에는 이탈 조짐이 감지됐다. '광주의 연남동'으로 불리는 동명동의 카페에서 만난 전남대 학생은 본인을 '민주당 지지자'라고 소개하면서도 "부모님 세대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과 젊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옆에 있던 친구는 맞장구를 치며 "현 정부가 못하니까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라면서 "정책만 좋다면 다른 당도 찍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현재 사는 동네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누군지 모른다면서도, 가장 인상적인 정치인으로 '서진정책(호남공략)'을 추진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꼽았다.



광주는 민주당의 텃밭인지라 당선이 유력한 만큼 총선 때마다 '물갈이 1번지'로 통한다. 다만 초선 정치인에 대한 피로감 또한 컸다. 지난 19·20대 국회에서 초선 의원은 8명 중 3명에 불과했지만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7명으로 늘었다. 이날 찾은 광주 시내 곳곳에서 출마를 앞둔 '신입' 정치인들의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광주지하철 문화전당역에서 만난 최진석(46)씨는 "이력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정치경험"이라며 "재선 이상은 돼야 여당하고 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지역 단골 이슈인 '호남 신당'에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찬반 입장이 비등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금남로공원에서 만난 김영호(76)씨는 호남신당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자 대뜸 양향자(광주 서구을) 무소속 의원을 거론하며 "민주당 깃발이 없으면 호남에선 안 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선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당이 광주지역 의석을 휩쓴 적도 있지 않느냐고 재차 묻자 "그 사람들 지금 다 국민의힘에 가 있지 않느냐"며 "광주에선 정치인생 끝났다"고 잘라 말했다.

광주=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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