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 아무리 호소해도 소용없는 이유...실측률 30%도 안돼

입력
2023.10.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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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반 민원 10건 중 실측 3건 미만
악취 실체 파악 위해선 필수인데
실측 손 놓고 있는 전국 지자체들

편집자주

전국 곳곳에서 '후각을 자극해 혐오감을 주는 냄새', 즉 악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취 민원은 무수히 쌓이는데 제대로 된 해법은 요원합니다. 한국일보는 16만 건에 달하는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국내 실태 및 해외 선진 악취관리현장을 살펴보고, 전문가가 제시하는 출구전략까지 담은 기획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지난 5년 6개월 간 전국에서 악취의심지역을 특정하여 제기된 민원 12만6,689건 가운데, 지자체 의뢰로 정부 인증 검사기관이 악취 정도를 실측한 결과는 3만3,125건에 불과했다. 실측비율 26.1%다. 민원 10건을 접수받아도 이를 과학적으로 검사하는 비율은 3건이 채 안 된 셈이다. 어기구 더불어민주당의원실이 전국 광역지자체로부터 제출받은 '악취 민원에 따른 실측 결과(복합악취성적서)' 원자료와, 취재팀이 확보한 악취민원 정보공개청구 자료 등 총 15만9,814건의 데이터를 비교분석한 결과다.

광역지자체 17곳 가운데 절반 이상인 9곳의 악취 민원 대비 실측비율은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기초지자체 중에선 실측 기록이 단 1건도 없는 곳이 23군데였는데, 이들 지자체가 접수한 악취의심지역 민원은 4,000건을 넘었다. 실측을 해야만 악취의 실체 파악이 가능함에도 지자체가 손 놓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관련 규정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원에 의거하여 악취의 정도를 검사한다'는 명문화된 규정을 가진 기초지자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생활악취는 의무 실측 대상도 아냐

광역지자체 중 악취의심지역 민원에 대한 실측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서울이었다. 2018년 1월부터 올 상반기까지 9,264건의 악취의심지역 민원이 쌓였으나 실측을 진행한 사례는 단 533건(실측률 5.8%)이었다. 실측률이 전국 평균치 미만인 광역시·도는 부산(11.5%), 대전(12.3%), 제주(12.4%), 광주(15.1%), 충남(19%), 경기(21.9%), 전남(24.5%), 경남(25.6%) 등이었다.

이 9개 지자체 중 7곳에는 악취 실측 기록이 0건인 기초지자체 17곳이 있다. 이들을 포함한 총 23곳의 기초지자체가 5년 반 동안 민원 대응 차원의 악취 검사를 하지 않았다. 해당 지역이 접수한 악취의심 민원은 총 4,222건이다. 이 지자체들은 실측을 안 한 주된 이유로 "악취배출시설에서 나는 냄새가 아닌 생활악취 주)1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무검사 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실측 제로'인 기초지자체 중 해당 기간 지역 내 악취 민원이 가장 많이 접수된 곳은 경기 성남시(846건)다. 성남시는 6월 초에도 "인근 건물의 타는 냄새가 비 올 때 더 심해진다"며 "맡아도 되는 냄새인지 확인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검사 요구 민원을 접수했지만, 그뿐이었다. 성남의 한 구청 관계자는 "악취방지법상 악취배출시설인 사업장은 실측을 하게 돼 있으나, 악취배출시설에 해당되지 않으면 배출허용기준도 없고, 흡진설비 설치 의무대상도 아니다. 성남시에는 악취배출시설이 없다"고 했다.

민원 260건이 제기됐음에도 악취 실측 기록이 없는 부산 수영구 관계자 또한 "악취 실측 의뢰를 위해 시료를 포집하려면 악취배시설이어야 하는데, 수영구 민원의 악취는 음식점, 하수도 냄새 등이라 포집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규정도 없고, 담당인력은 전국 81명뿐

각 기초지자체에는 민원에 대한 실측을 명시해둔 자체 규정이 없다. 본보가 전국 기초지자체 231곳의 관련 조례를 전수조사한 결과 '냄새가 난다'는 민원 접수 후 시료 포집, 실측 의뢰로 이어지는 절차를 명문화한 시스템을 갖춘 지자체는 지난달 22일 기준 1곳도 없었다. 50곳의 기초지자체가 악취방지 및 저감조례 또는 생활악취조례를 갖추고 있었으나, 민원 대응은 명시돼 있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지자체들은 민원이 쏟아져도 즉각 실측 의뢰를 하기 어렵다. 실제 서울 송파구의 경우 장지동의 한 음식물쓰레기처리시설에만 2018년 이후 올해까지 1,402건의 악취의심 민원이 집중됐으나, 서울보건환경연구원의 악취 실측은 작년까지 19건뿐이었다. 송파구 관계자는 "서울은 악취 의무 측정 대상 지역이 아니라서 실측을 안 해도 되지만, 자발적으로 보건환경연구원에 실측을 의뢰해 1년에 1~2건 정도만 실시한다. 올해는 1건만 했다"고 말했다. 송파구는 지난 7월 '생활악취저감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으나 냄새 민원을 실측으로 이어지게 하는 규정은 만들지 않았다. 구 관계자는 "별개로 월 1회 외부 악취 측정 기관에도 실측을 의뢰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부산 사하구의 한 사업장에도 5년 반 동안 악취의심민원 1,062건이 접수됐으나 실측은 11건이었다. 사하구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온다 해서 바로 실측으로 이어지기엔 행정적 무리가 있다"고 털어놨다.

설사 당장 규정을 만든다 해도 실측을 나갈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기기뿐 아니라 사람의 코(후각)가 냄새를 측정하는 주된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류희욱(숭실대 화학공학과 교수) 한국냄새환경학회장은 "냄새 유발 물질은 그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아무리 좋은 센서를 개발해도 모든 악취 물질을 감지할 수 없다. 기계가 인체의 후각세포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 악취를 느끼고 그 피해를 호소하는 건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실측에도 사람의 후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남권의 한 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도 "무인 악취측정 센서는 정기적으로 유지·보수를 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결과를 내놓기 때문에 국립환경과학원이 고시하는 악취공정시험법은 인체 후각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실측 인력은 전국 보건환경연구원의 악취분석 연구사들이다. 어기구 의원실이 각 광역지자체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9월 기준 전국 모든 보건환경연구원의 악취분석 연구사를 합쳐도 81명 뿐이다. 지역당 평균 5명이 채 안 된다. 이들이 지난 5년여 간 발생한 전국 악취 의심민원 12만6,000여 건의 실측을 모두 담당했다고 가정하면, 단순 계산으로도 1명이 이틀에 한 번 꼴로 악취 측정·분석을 해야 했다는 결과가 나온다. 악취 실측 업무를 맡았던 한 전직 보건환경연구원 연구사는 "연구원마다 적게는 2명, 많게는 7명의 악취분석 연구사가 있는데, 과중한 업무로
기피 자리가 된 지 오래"라고 했다.

[인터랙티브] 전국 악취 지도 '우리동네 악취, 괜찮을까?'

※ 한국일보는 2018년 1월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전국 모든 기초지자체 및 세종시가 접수한 악취의심지역 민원 12만 6,689건과, 이 민원에 대응해 냄새의 정도를 공식적으로 실측한 데이터 3만 3,125건을 집계해 분석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내가 사는 곳의 쾌적함을 얼마나 책임지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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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
악취방지법 16조는 생활악취를 "악취배출시설 외의 시설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악취"로 규정. 즉, 공장, 축사 등 악취배출시설이 아닌 음식점, 하수구맨홀, 농경지 퇴비 같은 데서 나는 냄새를 뜻함.
윤현종 기자
이현주 기자
오지혜 기자
문예찬 인턴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