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정당성의 고지를 차지한 것 같지만 그 미래가 밝다고는 못 하겠다. 체포동의안 가결 책임을 지고 박광온 전 원내대표, 송갑석 전 최고위원이 물러나면서 민주당은 ‘친명의 메아리’에 갇힐 위험이 커졌다. 가결표를 던졌을 의원들을 향해 “반드시 외상값은 계산해야 할 것”(정청래 의원)이라는, 양심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전체주의 정당으로 한발 더 나아갔다. 비명계 의원들이 잇따라 부결표를 던졌다고 밝힐 만큼 위협이 실질적이니 앞으로 이 당이 다양한 의견을 내고 토론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물론 “(이 대표 개입의) 직접증거 자체는 부족”하다는 유창훈 부장판사의 영장 심사 결과는 무리한 검찰 수사를 시사하는 게 사실이다. 대선 경쟁자였고 제1야당 대표인 이를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수사한 전례도 없다. 그러나 이 대표가 억울하다고만 볼 수 없는 근거 또한 있다. 그가 최종 결재권을 가졌던 대장동·백현동·불법송금 사건 관계자 24명이 이미 구속기소됐고 최측근들이 포함됐는데 이 대표의 연루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유 판사도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여야가 맞닥뜨릴 정치적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사과와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하며 반격에 나섰으나 윤 대통령은 사과든 영수회담이든 무시하는 중이다. 백현동·불법송금 사건까지 기소되면 이 대표는 주 3회 법정에 나가면서 총선을 치러야 할 상황이다. 지금까지 민생현안 주도권을 잃게 만든 ‘이재명 사법리스크’는 이제 총선을 출렁거리게 할 것이다. 불구속 결정 즈음 민주당 지지율이 1.5%포인트 상승한 여론조사(리얼미터 9월 25~27일 조사)가 있었지만 여파는 지지층 결집 정도일 것이다.
이 대표가 공직을 방탄으로 사용(私用)한다는 의심은 대선 패배 직후 서둘러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을 때부터 나왔다. 의심을 확신으로 만든 것도 그 자신이다. 최근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함으로써, 국회에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한 국민과의 약속을 석 달 만에 내던지고 3주간의 단식 명분마저 훼손했다. ‘못 믿을 정치인’이란 불신은 정점을 찍었다. 돌이켜 보면 당대표로서 그는 국민과 약자를 대변하는 헌신, 당을 통합시키는 리더십, 타협을 끌어내는 정치력을 보인 적이 없다. 김남국 의원 코인 논란과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에선 자정능력 부재를 드러냈고, 당 혁신이라는 절호의 기회는 ‘이래경 논란’을 자초하며 하수구로 흘려보냈다. 2월 첫 체포동의안 투표 땐 이탈표 색출을 자제하라면서 사실상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지금 체포동의 여부를 밝히라며 십자가 밟기를 종용하고 분열은 심각해진 민주당 분위기에 이 대표의 책임이 없나.
검찰의 편향 수사가 심각하다 해도, 그 부당성을 반증하기 위한 존재로서의 당대표는 무의미하다. 냉정하게 보면 이재명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당내 부정·부패를 외면하고 분열을 방치하는 당대표가 없으면 민주당은 혼란에 빠질까. 다양성과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다수 국민의 눈높이에서 멀어지는 정당이 강성 지지층만 끌어들여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걸까.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와 정권 심판론이 이렇게 높은데도 민주당이 대안으로 꼽히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토록 결함 많은 당대표가 자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 전에는 비대위 체제로 갈 것이라며 아무 변화도 노력도 없는 민주당이 지긋지긋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치열하게 성찰하고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그들이 진 책임은 강성 지지층이 아닌 국민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