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 붙은 편지가 반갑다

입력
2023.10.05 04:30
27면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윤동주와 유관순이 힘찬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인물 우표 이야기다. 지난달 말 우표 수집광 친구와 오랜만에 우표전시회에 다녀왔다. 대학 시절 이 친구를 위해 네댓 명이 우체국 근처 공원에서 밤새워 막걸리를 마신 적이 몇 번 있다. 우체국 문이 열리고 원하는 우표를 손에 쥔 친구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짓곤 했다.

“우표에서 얻은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많다.” 우표 수집가로 유명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우표에 역사, 인물, 자연, 정치, 사회, 문화 등 한 나라의 모든 게 담겨 있기 때문일 게다. 자신이 소아마비를 극복하는 데 우표 수집이 큰 힘이 됐다는 그의 말은 우표와 관련해 자주 인용된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역시 우표 수집광으로 유명하다. 혁명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도 우표첩을 챙겨 피신했을 정도다.

우표가 붙은 편지를 받아본 지 오래됐다. 지인들에게 우표 산 날을 물어보니 "아들이 군에 입대할 때"라는 답이 많다. “아들의 편지를 받고 싶어 50장을 사서 보냈는데, 두 통 받곤 끝났다”며 아쉬워한 친구도 있다. 우표보다 바코드 스티커에 익숙해진 요즘, 우편업무의 효율성은 높아졌을지언정 운치도 낭만도 사라졌다.

우표는 편지 봉투에 붙이고, 편지는 부쳐야 한다. ‘붙이다’와 ‘부치다’는 발음이 같지만 뜻은 다르니 잘 구분해 써야 한다. ‘붙이다’는 ‘붙다’의 사동사로, 뭔가 두 개 이상을 가깝게 맞대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편지 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벽에 가구를 붙이고, 촛불을 붙이고, 구실을 붙이고, 조건을 붙이고, 흥정을 붙이고, 별명을 붙인다.

다른 단어와 합해져 하나의 말이 된 경우에도, 맞닿아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붙이다’가 바르다. 밀어붙이고 쏘아붙이고 걷어붙이고 몰아붙인다. 그러나 힘차게 대들 기세로 벗는 ‘벗어부치다’는 몸에서 옷이 떨어지는 상황이니 밀착과는 거리가 멀다.

‘부치다’는 꽤 다양하게 쓰인다. 편지를 부치고, 표결에 부치고, 비밀에 부치고, 힘에 부친다. 또 논밭을 부치고, 빈대떡을 부치고, 경매에도 부친다.

‘작은 포스터’ 우표가 붙은 편지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서 편지를 받으면 가슴이 뛴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도 털어놨다. “겉봉에 쓰인 내 이름을 보면 사랑에 찬 심장의 고동에서 절묘한 음악을 끌어내 들리지 않는 심포니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노경아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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