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67개 경찰관서(경찰서·지구대·파출소·치안센터)에 권총과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이 모두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 치안을 강화해 흉악 범죄에 맞서 신속하게 범인을 제압한다는 정부의 기조와 어긋난다. 올해 서울 신림역과 분당 서현역 등에서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는데도 시민의 안전을 지킬 경찰관 일부는 무방비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경찰청이 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각 지역관서 총기 현황'에 따르면 전국 2,050개 경찰관서 가운데 권총과 전기충격기를 모두 갖추지 않은 곳은 67개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41개로 가장 많았고 경기·광주(각 7개), 서울(5개), 대구(3개), 세종·전남(각 2개) 순으로 집계됐다.
주요 관서로는 서울 종로(평창·옥인·세종로·청진), 서울 남대문(회현), 경기 김포(김포T), 경기 포천(군내·창수·관인·화현·이동·영중), 대구 달성(논공·화남·하빈), 광주 광산(송정·비아·동곡·본량·임곡), 세종 북부(연동·전동), 경북 포항북부(환여·신광·기북·용당), 경북 경주(산내·역전·서면·강동·중앙·황남·용강), 전남 여수(남산), 전남 화순(역전) 등에 권총과 전기충격기가 비치되지 않았다. 권총만 구비하거나(3개), 전기충격기만 갖춘(4개) 경찰관서도 있었다.
서울의 경우 세종로와 남대문 일대를 관할하고 있는 지구대·파출소가 포함됐다. 정부서울청사와 주한미국대사관 등 정부 주요기관 및 외교공관, 주요기업 본사 등이 몰려 있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흉기를 사용한다면 적잖은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지역들이다.
이에 경찰청 관계자는 "해당 관서들은 간단한 민원 처리 위주의 '주간 파출소'로 운영되고 있는 곳으로 안전 등 문제로 총기 등을 상시 보관하고 있지는 않다"며 "다만, 실제 근무시에는 중심지역관서에서 총기와 전기충격기를 수령해 착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권총과 전기충격기를 구비했다고 해도, 근무인원 대비 보급률이 턱없이 낮다는 점이다. 실제 권총과 전기충격기를 하나라도 갖춘 전국 지구대·파출소 1,964개(무응답 관서 제외) 가운데 696개 관서의 경우 보급률은 근무 인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관이 현장에서 2인 1조 근무 시, 각자 권총이나 전기충격기를 갖고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총기 보급률이 저조한 이유로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총기 범죄 발생이 드물고 △총기 사용에 따른 과잉진압 논란, 배상 문제로 인한 심리적 위축을 꼽는다. 총기 보급을 늘려달라고 경찰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정부는 범죄 대응력 강화 관련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4배 이상 많은 1조1,476억 원으로 편성했다. 이상동기 범죄 대응을 위해 경찰관 1명당 1정씩 저위험 권총을 보급하는 내용도 담겼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모든 현장 경찰에게 저위험 권총을 보급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조치다.
정우택 의원은 "일선 경찰들이 무방비로 고위험 범죄자에게 대응하는 건 마치 군부대에 총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저위험 권총 보급과 병행해 관서별로 최소 총기 1정씩은 비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