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환경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잇따라 체포되거나 법정에 서고 있다. 환경보호 활동에 힘입어 시민사회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베트남 정부가 탈세 등 모호한 이유를 내세워 환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일 VN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베트남 공안은 응오티토니엔 ‘베트남 에너지전환 이니셔티브(VIETSE)’ 전무를 내부 문서 도용 혐의로 체포했다고 전날 밝혔다. 그가 베트남전력공사(EVN) 산하 송전 공사 관계자를 통해 국영 전력 관련 비공개 문건에 접근했다는 게 공안의 설명이다.
VIETSE는 화석연료 사용 축소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연구 싱크탱크다. 니엔은 유엔과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와 협력해 온 환경·에너지 전문가다. 앞서 국제인권단체인 88프로젝트는 지난달 15일 베트남 공안이 니엔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구금했다며 석방을 촉구했는데, 경찰 당국이 보름 만에야 구금 사유를 공개한 셈이다.
베트남 정부는 이번 체포가 그의 부도덕한 행동에서 비롯됐을 뿐, 환경 관련 행보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니엔이 최근 주요 7개국(G7)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화석연료 사용 감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터라, 그의 행보를 불편하게 여긴 당국이 철퇴를 가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베트남에서 환경운동가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도 이런 의심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28일 유명 환경운동가 호앙티민홍이 탈세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게 대표적이다. 홍은 2013년 환경단체 ‘체인지’를 설립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불법 야생동물 거래 등 문제에 대한 베트남의 적극적 대응을 촉구해 왔다. 2019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베트남 여성 50인’에도 포함됐다.
지난해엔 베트남인 중 처음으로 ‘환경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먼환경상’을 받은 세계적 환경운동가 응우이티카인이 탈세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당시 미국 국무부와 하노이 주재 영국대사관, 전 세계 기후·환경 단체가 즉각 석방을 요구했지만, 법원은 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2년간 베트남에서 최소 6명의 환경운동가가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국제사회는 시민사회의 영향력 확대가 베트남 에너지 정책과 일당독재 정치 체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베트남 정부가 저명한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성장과 함께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환경 운동을 매개로 풀뿌리 시민운동이 움트자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미리 싹을 잘라내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1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국빈 방문했을 당시, “인권 분야 진전이 양국 협력에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크게 변한 건 없는 셈이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베트남 환경운동가가 줄줄이 체포된 건 베트남 내 환경 운동을 둘러싸고 점점 더 커지는 정부의 불안을 강조한다”고 짚었다. 필 로버트슨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 부국장은 “정부가 모호하고 결함 있는 세법 등을 선택적으로 적용해 환경·기후변화 활동가들을 탄압하고 있다”며 법이 반대파 처벌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