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 첫 단풍 개화

입력
2023.10.02 17:00
18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설악산에 올해 첫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추석연휴를 지나 가을의 한복판에 들어가는 신호탄이다. 2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시작된 설악산 단풍은 작년보다 1일, 평년보다 2일 늦었다. 국내에서 단풍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 설악산이다. 단풍은 산 정상에서부터 아래로 20%가 물든 시점을 기준으로, 산의 80%가 물든 때를 절정으로 본다. 단풍의 절정기는 약 20일 이후에 이르게 된다.

□ '붉을 단(丹)'에 '단풍나무 풍(楓)'. 녹음이 무성하던 나뭇잎이 붉고 노랗게 물드는 현상이 단풍이다. 나뭇잎이 녹색을 띠는 건 식물 생존에 필수적인 광합성 작용과 관련한 엽록소 때문이다. 엽록소는 기온이 올라갈수록 활발히 생성된다. 연한 초록빛이던 나뭇잎이 한여름에 짙은 녹색으로 변하는 이유다. 하지만 햇빛이 약해지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다양한 색조로 나뭇잎이 변한다. 노란 단풍과 빨간 단풍이 대표적이다. 빨간 나뭇잎이 탄생하는 원리가 좀 더 복잡하고 보기에도 화려하다.

□ 단풍은 캐나다가 가장 유명하다. 단풍나무는 단맛이 많아 사탕단풍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에서 추출한 수액으로 만든 게 메이플 시럽.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한 메이플 수액을 원주민들이 봄철에 수확해 가열하면서 탄생한 것이다. 캐나다 동부 나이아가라폭포에서 퀘벡시티까지 이어지는 무려 800km의 '메이플 로드'가 세계적인 단풍명소다. 일본에선 전통 건축물과 조화롭게 만발한 교토의 기요미즈테라 사원 단풍이 인기가 많다.

□ 청명한 하늘에 가을이 깊어지면 전국의 산이 형형색색으로 단장한다. 단풍은 일교차가 심할수록 색이 더 선명해진다. 평지보다는 산, 음지보다는 양지바른 곳에서 아름답게 물든다.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며 조선 8경의 하나로 꼽힌 내장산 단풍터널에 빠져드는 호사를 누린다면 겨울이 두렵지 않을 듯하다. 한류의 성지인 서울도 곧 단풍의 계절이 닥친다. 풋풋한 봄기운이 어제 같은데 이달 말이면 황색과 어우러진 자주색 단풍으로 도시가 물들 것이다.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온갖 뉴스를 잠시 잊고, 붉은 단풍에 흠뻑 젖어 가을 정취에 몸을 맡길 계절이 시작됐다.

박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