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증권 아시나요" 세계 최초 토큰증권거래소 만든 김도형 핀헤이븐 대표

입력
2023.10.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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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정식 증권사 등록하고 증권위에 참여
국내 증권사들과 토큰증권거래소 시스템 도입 논의

새로운 금융상품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토큰증권(security token, ST)이다. 토큰증권이란 투자할 수 있는 모든 상품을 디지털화한 전자증권이다. 주식뿐 아니라 그림, 음악, 영화, 부동산, 술, 쇠고기 등 다양한 상품이 투자 대상으로 거듭날 수 있다.

따라서 기존 주식시장을 넘어서는 거대 투자 시장이 새로 형성될 전망이다. 세계경제포럼은 전 세계 토큰증권 시장이 내년 1조5,000억 달러(약 2,061조 원)에서 2030년 16조 달러(약 2경2,000조 원)로 급팽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나금융연구소 등에 따르면 국내 토큰시장 규모도 내년 34조 원, 2030년 367조 원 규모로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렇다 보니 정부와 국회에서도 내년 말까지 토큰증권을 제도권에 포함하기 위해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국내 증권사들도 너나없이 토큰증권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토큰증권 분야에서 우리보다 발 빠르게 앞서간 곳이 캐나다다. 캐나다는 세계 최초의 토근증권거래소를 허가했다. 세계 최초의 토큰증권거래소를 운영하는 곳이 김도형(53) 대표가 2017년 캐나다에서 창업한 금융기술(핀테크) 분야의 신생기업(스타트업) 핀헤이븐이다. 국내 사업 점검차 잠시 방한한 김 대표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나 토큰증권의 이모저모를 알아봤다.


"토큰증권, 암호화폐와 다르다"

토큰증권은 용어부터 낯설다. 김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투자상품에 대한 권리를 저장한 전자문서"라고 정의했다. 디지털 문서이지만 분산저장 기술인 블록체인을 이용해 원본과 거래기록을 발행처, 거래소, 규제기관 등 여러 곳에 나눠 저장하기 때문에 어느 한곳에서 위조나 변조를 할 수 없다.

문제는 테라와 위믹스 사태 등 암호화폐로 촉발된 블록체인에 대한 불신이다. 암호화폐도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안정 자산이라며 발행한 암호화폐 테라와 루나의 연동 시스템이 붕괴되며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 약 450억 달러(약 62조 원)의 손실을 끼친 이후 덩달아 블록체인 기술까지 의심을 사고 있다. 국내 게임업체 위메이드도 암호화폐 위믹스를 발행하며 당초 약속한 공시 물량과 달리 초과 물량을 유통시켰다가 가격 급락으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면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토큰증권은 암호화폐와 다르다"고 못을 박았다. "처음부터 암호화폐와 섞이지 않도록 선을 그어놓고 토큰증권에 필요한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했어요. 그래서 암호화폐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이나 실수가 토큰증권에선 발생하지 않아요."

대표적인 경우가 시장을 속이는 초과 물량 발행이다.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토큰증권에서는 정부 규제당국이 원본을 분산저장하는 곳(노드) 중 하나로 참여해요. 이렇게 되면 100% 관제할 수 있죠. 심지어 증시에서 일어나는 공매도도 불가능해요. 아침에 주식을 빌려 오후에 팔아서 돌려주는 공매도는 일시적으로 실제 숫자보다 주식이 많이 발행되는 셈이죠. 그런데 규제 당국이 총량 관리에 참여하는 토큰증권에서는 공매도를 할 수 없어요."

테라 사태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상식적이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테라 사태는 발행 측에서 강조한 내용이 처음부터 비상식적이었어요. 마치 돈이 자동으로 계속 돌 것처럼 강조했는데 블록체인에서는 그럴 수 없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투자했어요."

증권사와 증시가 결합된 특이한 회사

캐나다 밴쿠버에 본사가 있는 핀헤이븐은 증권사와 증권시장 역할을 겸하는 독특한 회사다. "한국의 증권사와 예탁결제원, 증권거래소를 하나로 통합한 역할을 핀헤이븐이 해요. 2020년 캐나다에서 이렇게 통합된 기능을 유일하게 샌드박스로 적용했어요. 캐나다에서도 실험적인 시도죠."

김 대표는 핀헤이븐을 4개사로 구성했다.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핀헤이븐 테크놀로지는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한다. 핀헤이븐 캐피털이 증권사이자 증권거래소, 예탁결제원을 통합한 역할을 하는 토큰증권 유통의 중심이다. 이 업체는 2020년 캐나다 증권위원회에 정식 등록된 증권사다.

핀헤이븐 아시아는 한국 사업을 위해 2020년 설립했다. 핀헤이븐 게이트웨이는 암호화폐를 각국 화폐로 바꿔주는 외환거래 서비스를 한다. "한국 법인을 제외한 핀헤이븐 테크놀로지와 캐피털, 게이트웨이 3개사 대표를 맡고 있어요. 이렇게 3개 사가 토큰증권 발행부터 거래, 현금화까지 모든 과정을 처리해 주죠."

김 대표가 추구하는 것은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복잡한 금융거래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주식 발행과 보관, 거래하는 곳이 제각각이어서 발생하는 복잡한 구조를 블록체인 기술로 단순화하고 거래 위험을 줄이는 것이 목표죠. 즉 판매자, 구매자, 중개자(시장)로 단순화시켜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고 싶어요."


영화도 토큰증권으로 제작

김 대표는 다양한 상품을 토큰증권으로 만든다. "비상장주식과 전환사채(CB), 펀드, 대체불가토큰(NFT), 부동산투자상품인 리츠 등을 토큰증권으로 만들어요. 다만 개인들이 투자하기에 위험성이 큰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은 일부러 피해요."

재미있는 상품은 영화 NFT를 이용한 토큰증권이다. "미국 유명배우 로버트 듀발이 할리우드에서 제작자로 참여하는 영화 '더 위치 웨이 트리'(The Which Way Tree) 제작비를 토큰증권으로 조달해요. 토근증권을 구입한 사람들이 제작비를 대는 개념이죠. 토큰증권 구입자에게는 영화의 독점 콘텐츠를 NFT로 만들어 제공해요. 영화 토큰증권의 확정수익률은 20%예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수익을 돌려받지만 실패하면 투자금이 날아가죠."

국내에서도 영화 토큰증권 발행을 검토 중이다. "요즘 소규모 영화제작사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래서 국내 영화제작사와 토큰증권으로 제작비 마련 방안을 논의 중이죠."

핀헤이븐은 토큰증권 9개 종목을 2021년 1월 개설된 '핀헤이븐 프라이빗 마켓'이라는 거래소에서 판매 중이다. "최초 토큰증권 가격은 기업가치에 따라 정해져요. 기업가치는 토큰증권 발행기업과 핀헤이븐이 함께 논의해 결정하죠."

캐나다에서 토큰증권으로 발행하는 작업은 철저한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오래 걸린다. "토근증권 발행 전 6개월 동안 해당 기업에 대해 핀헤이븐이 실사를 해요. 발행 기업의 재무건전성, 경영진 경력, 회계 감사시스템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죠. 경영진의 과거 증권거래법 위반 및 불성실한 금융거래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광산업 하며 핀테크 발굴

김 대표는 독특하게도 창업 전 광산 일을 했다. 그는 미국 유학을 가서 루이스앤클라크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뒤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에서 3년간 일했다. 이후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3학기 동안 강의를 했다. "강의를 하며 국내 기업의 경영자문을 했는데 그때 광산업체인 동원탄좌와 인연이 닿았어요. 그러면서 몰리브덴 등 광산을 개발하는 NMC리소스를 2008년 창업했죠. 지금도 NMC 대표를 겸하고 있어요."

두 번째 핀테크 창업을 캐나다에서 한 이유는 밴쿠버가 거주지이기도 하지만 국제 확장성을 고려한 선택이다. "캐나다 금융시장은 영연방 국가들과 연결이 잘 돼 있어요. 특히 캐나다에서 인허가를 받은 금융업체는 다른 영미권 국가에 진출했을 때 따로 실사를 받지 않는 패스포트 제도를 적용받아 유리해요."

김 대표는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증권위원회 자문위원까지 맡고 있다. 캐나다의 금융시장 혁신을 위한 정책에도 관여하는 셈이다. "정기 회의를 통해 금융시장 혁신을 위한 실험적인 정책들을 논의하죠."


"블록체인, 문명 발달의 도구 될 것"

요즘 김 대표는 국내 증권사들의 숱한 러브콜을 받고 있다. "토큰증권 사업을 준비 중인 국내 증권사 10여 개사와 논의 중이에요. 이 가운데 2개 사와 양해각서를 맺었죠."

국내 증권사와 논의하는 것은 핀헤이븐 시스템의 국내 도입이다. "캐나다에서 하는 핀헤이븐의 토큰증권 거래시스템을 한국 시장에 맞게 적용하는 방안을 국내 증권사들과 논의 중이죠."

그는 증권사마다 각자 거래소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증권사마다 각자 거래소를 만들면 암호화폐처럼 거래소마다 토큰증권 가격이 제각각일 겁니다. 그럼 투자 예측이 안 돼 투자하기 힘들고, 유동성이 공급되지 않으면 시장확대에 한계가 있죠."

그는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이제 걸음마를 떼었어요. 세계 각국에서 중앙은행 전자화폐(CBDC)가 도입되면 블록체인의 혁신성이 진가를 발휘할 겁니다. 캐나다도 CBDC 개발을 끝내놓고 의회 통과만 기다리고 있어요. 기술을 잘못 활용하면 문명을 파괴하지만 잘 활용하면 문명을 더 발달시킬 수 있어요. 그렇게 만들어야죠."

최연진 IT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