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가 뿌린 야구 씨앗, 10년 만에 기적으로 돌아왔다...라오스 첫 승 감격

입력
2023.09.28 12:15
라오스 야구 전도사 된 이만수 전 감독
2014년부터 뿌린 씨앗 결실 이뤄

'헐크' 이만수 전 SK 감독이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 뿌린 씨앗이 마침내 결실을 이뤘다.

라오스 야구 대표팀은 지난 27일 중국 항저우 사오싱 야구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예선에서 싱가포르에 8-7로 역전승을 거뒀다. 2회초에 먼저 2점을 내준 뒤 3회말 동점을 만들고 6회말 대거 5점을 뽑아 승기를 잡았다.

이후 싱가포르의 추격에 1점 차까지 쫓겼지만 리드를 끝까지 지켰고, 라오스 선수단은 우승이라도 한듯 마운드로 달려가 기뻐했다. 이로써 라오스는 전날 태국에 패한 뒤 감격적인 아시안게임 첫 승을 신고했다. 28일 태국이 싱가포르를 꺾으면 라오스는 예선 2위로 본선에 오른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는 전패로 예선 탈락했다.

스태프 총괄 책임자로 라오스 야구 대표팀에 합류한 이 감독은 기적과도 같은 첫 승에 감격했다. 이 감독은 28일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때만 해도 태국이나 싱가포르에 이긴다는 생각을 못했다"며 "그런데 태국과 경기를 보고 나서 다음날 싱가포르는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어 "태국전 승리는 제인내 대표와 김현민 감독 그리고 이준영 감독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다. 그리고 최고 수훈 선수들은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선수들이 잘할 수 있도록 수년 동안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요즘 불모지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한 ‘야구 전도사’로 통한다. SK 감독 재직 시절 2013년 11월 라오스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 연락을 받아 처음 인연을 맺고 용품 지원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 말 처음 라오스로 건너가 미니야구팀 ‘라오 브라더스’ 창단 작업을 진행하며 본격적인 야구의 씨를 뿌렸다.

역사적인 승리 후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은 이 감독은 "마지막 9회 3아웃이 되자마자 곧바로 그라운드로 뛰쳐나가 선수들과 함께 마운드에서 뒹굴었다"며 "모든 것들이 다 불가능처럼 보였던 일들이 10년 만에 기적처럼 이뤄지는 순간이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는데 누가 봤으면 꼭 금메달을 딴 것처럼 오해했을 거다. 그만큼 라오스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첫 승이 금메달보다 값진 승리였다"고 했다.

이 감독은 "아무도 없는 코치실에 앉아 눈물을 한 없이 흘렸다. 솔직히 88년 만에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해도, 선수 시절 3관왕과 최고 기록을 세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왠지 모르는 눈물이 한없이 나의 볼을 향해 내렸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감독은 "10년 동안 묵묵하게 나의 뒷바라지를 위한 아내에게 첫 승을 바치고 싶다. 아내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사랑이 없었다면 인도차이나 반도에 야구 보급은 불가능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항저우 = 김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