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5000억 중견건설사의 몰락... 회장의 '마스크 사업' 한눈팔기로 시작

입력
2023.10.01 14:00
[법정관리로 간 대우산업개발 사건 전말]
이상영, 마스크 품귀 현상 때 개인회사 설립
경영권 분쟁 일면서 고소·고발 리스크 촉발
회삿돈 회수 방안 등 '조건 없이' 476억 투입
배임·횡령, 분식회계·대출사기까지 눈덩이


기업 회장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마스크 회사에 대출해준 회삿돈만 476억 원에 달한다. 기업은 (회장의) 개인 금고로 사유화했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 수사결과 발표중)

'이안'(iaan)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잘 알려진 대우산업개발. 지난해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서 75위에 오른 건설회사지만, 분식회계와 경영비리 등의 내홍을 겪으면서 경영 상태가 악화돼 8월 초 법원에 기업회생(법정관리)을 신청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 해 매출이 5,080억원(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에 달하는 중견기업의 몰락은 '오너리스크'에서 시작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관련 기업 몸값이 하늘로 치솟던 2020년 초, 총수가 한 몫을 단단히 챙길 기대를 품고 뛰어든 마스크 사업이 비극의 단초다. 마스크 사업 도중 이상영(42) 회장과 지인의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비위 의혹이 드러났고, 이 회장이 회수 계획도 없이 개인회사에 대우산업개발 자금을 쏟아부은 것이 문제가 됐다. 그는 배임 혐의로 덜미가 잡혀 결국 구속기소됐다.

발단은 2020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사업 가능성을 본 이 회장은 지인이었던 당시 제니스컴퍼니 대표 황모씨와 각각 15억 원을 투자해 마스크 제조·판매업을 동업하기로 뜻을 모았다. 같은 해 4월 충북 청주시에 '바이코로나'를 설립, 국내 마스크 시장에 출사표를 던져 이목을 끌었다. 중견건설사인 대우산업개발은 중소기업 위주였던 마스크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제와 사회를 위협하는 코로나19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공익을 위해 시작했다던 마스크 사업은, 결과적으로 이 회장 비위 혐의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본인 투자금이 부족하자 대우산업개발 자금을 대여금 방식으로 바이코로나에 끌어다 쓰면서, 배임과 횡령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검찰은 이 회장 요구로 한재준(53) 당시 대우산업개발 대표가 범행에 가담하면서 손 쉽게 자금을 마련했다고 본다. 그러나 검찰은 바이코로나의 재무상태·사업전망·변제능력 등에 대한 심사는 물론 담보 제공 등 대우산업개발 돈을 돌려받기 위한 자금 회수방안도 고려되지 않았다고 봤다.

바이코로나가 빠르게 자리를 잡으면서 사업 확장을 위한 추가적인 투자가 필요해졌다. 신생기업인 바이코로나 신용만으로는 금융권에서 돈을 끌어들이는 게 힘들다고 판단한 이 회장은 대우산업개발이 쌓아온 신용을 동원해 계속해서 대우산업개발 돈을 부었다. 그러나 설립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이 회장과 황씨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고, 바이코로나 사세는 기울기 시작했다. 설립 초기 지분은 이 회장 51%·황씨 49%였지만, 이 회장이 본인지분을 67%까지 늘려달라고 요구해 갈등이 싹튼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 회장은 2020년 8월 충북 청주시에 단독으로 마스크 제조업체 DW바이오를 설립하며 욕심을 냈다. DW바이오에 측근인 한 전 대표를 대표로 앉힌 뒤, 바이코로나의 제니스컴퍼니 측 공동대표를 해임하고 한 전 대표 단독 체제로 돌려 황씨를 경영에서 배제했다. 바이코로나는 생산공장이 DW바이오 명의로 전환되는 등 사실상 DW바이오에 흡수됐다. 바이코로나는 현재 정상적인 사업이 어려울 정도로 재무상태가 열악한 상황이다.

이 회장은 DW바이오에도 한 전 대표를 통해 대우산업개발 자금을 지속 투입해 사업을 키웠다. 그렇게 대우산업개발 자금은 대여금 형태로 2020년 5월부터 2021년 1월까지 바이코로나엔 53회에 걸쳐 161억8,200여만 원이, 2020년 8월부터 2021년 7월까지 DW바이오엔 54회에 걸쳐 315억4,700여만 원이 들어갔다. 이 와중에도 이 회장은 한 전 대표를 통해 부친의 벤츠 차량 리스보증금과 리스료 명목 약 8,700만 원을 DW바이오에서 유용하는 등 횡령도 서슴지 않았다.

바이코로나로 닦은 기반에 대우산업개발의 막대한 자금 투자로 마스크 생산설비만 217대를 마련하면서, DW바이오는 마스크를 월 1억5,500만 장 생산할 수 있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 시설을 갖추게 됐다.

마스크 품귀 현상을 등에 업고 사업은 이 회장 생각대로 흘러가는 듯 했다. 대우산업개발이 2021년 발행한 홍보자료에 따르면 DW바이오가 출시한 프리미엄 마스크 '에어데이즈'는 2020년 12월에 론칭하고 7개월 만에 국내에서만 6,000만 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해 7월엔 파나마 등 중미 8개국에 420만 달러에 달하는 수출계약을 체결하는 등 흥행했다.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황씨가 2020년 9월 이 회장이 경영권을 강탈해갔다며 횡령·배임·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고발 6건을 경찰에 접수하면서 비위 의혹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이 회장은 바이코로나 유상증자 대금 18억 4,000만 원 상당도 대우산업개발에서 유보금을 대여하는 수법으로 조달하며 개인자금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바이코로나 최대주주가 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사회 결의 없이 회삿돈을 금전소비대차 계약만으로 마스크 회사에 빌려주면서도, 당시 계약서·기안문 등 어디에도 채권을 받아낼 수 있는 조치는 적시하지 않았다. 대우산업개발은 이 회장 개인 회사를 위해 부실채권을 떠안으며 기약없이 손해를 감수한 셈이다. DW바이오의 지난해 말 재무제표 기준 순이익은 22억 원 수준이나, 단기차입금만 여전히 93억 원에 이른다.

수사가 지속되면서 이 회장은 최측근이던 한 전 대표와도 사이가 틀어졌고, 서로 폭로전을 벌이며 경영권을 두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혐의는 계속 늘어났다. 결국 이 회장과 한 전 대표는 둘다 △재무제표 허위 작성·공시를 통한 1,438억 원 상당 분식회계 △거짓 실적을 통한 금융기관 7곳에서의 470억 원 상당 대출 사기 △바이코로나·DW바이오 자금 대여를 포함한 대우산업개발에 대한 812억 원 상당 배임·횡령 등 혐의로 지난달 14일 구속된 채 재판에 넘겨졌다. 대우산업개발은 오너리스크에 더해 결제 대금 연체 등 경영난 심화로 회생신청서를 제출했고, 서울회생법원은 지난달 7일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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