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서 2명 숨진 침수 장갑차, 산소공급장비 없었다

입력
2023.09.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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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품 테스트라 돌발 변수 많았는데도 
작은 산소통 3개만...위치 파악도 늦어 
해경 수사 착수, 노동청도 법 위반 조사

경북 포항 앞바다에서 시운전 중 침수돼 방산업체 직원 2명이 숨진 사고가 발생한 장갑차는 침몰 등 비상시를 대비한 산소공급장비를 충분히 갖추지 않고 해상 테스트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위치 파악도 늦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군과 해경, 소방당국이 육안으로 장갑차를 찾느라 수중 수색에만 1시간 이상 걸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2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오후 3시쯤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해수욕장 인근 해병대 1사단 훈련장에서 시운전 중이던 상륙돌격장갑차(KAAV-Ⅱ)는 한 통에 10~20분 가량 버틸 수 있는 작은 산소통 3개를 갖추고 바다로 들어갔다. 이 장갑차는 해상침투작전에 투입되는 장비로,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수륙양용으로 개발됐다. 장갑차가 물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은 뒤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육지에서 이를 지켜보던 국방과학연구소(ADD) 관계자 등이 군과 해경 등에 알렸고 40여 분 뒤 소방 등이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장갑차 위치 파악에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해군 특수부대까지 동원돼 육안으로 수중 수색에 나섰고, 1시간이 지나서야 해수욕장에서 약 1㎞ 떨어진 수심 10여m 지점에서 장갑차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분한 산소공급장비 없이 장갑차가 장시간 물속에 잠겨 있었던 터라 특수부대 대원들이 장갑차를 발견해 해치(뚜껑)를 열었을 때, 방산업체 직원 2명은 심정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ADD 등은 사고 장갑차를 아직 물 밖으로 건져내지 못했다.

구조당국 관계자는 “물 안에선 수압 때문에 문을 바로 열 수 없어 탑승자들이 문을 열거나 구조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산소공급장비가 있는지를 구조 당시 확인했는데 없었다”고 말했다. 해병대도 상륙장갑차대대 해상기동훈련을 할 때 화재나 침수 등 비상 상황을 대비해 산소호흡기 사용법을 익히고 비상탈출훈련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문제의 장갑차에 산소공급을 해줄 만한 장비는 없었다.

산소공급장비가 수륙양용 장갑차의 필수 장비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모든 위험·돌발 상황을 상정해야 할 시운전이었다는 특성을 감안하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탑승자를 위한 안전 장치를 확보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당시 구조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사고에 대비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나 다른 장비도 부족해 보였다”며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이에 방산업체 관계자는 “이번 시제품 시험은 안전규정에 따라 산소통 3개가 배치돼 있었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탑승자 1명이 1시간 전후를 버틸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위치 추적도 탑승자가 착용한 목걸이 형태의 신호발생기로 찾을 수 있어 육안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사고 당시 신호발생기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등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해경은 본격 수사에 나섰다. 포항해양경찰서 관계자는 “사고 현장에 있던 직원 등을 대상으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당국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 조사에 나섰다. 대구지방노동청은 전날 포항지청 소속 근로감독관 2명을 현장에 파견해 안전조치 위반 등의 사항을 조사했고, 향후 추가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대구지방노동청 관계자는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만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며 “사안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도 조사할 것”고 말했다.

포항=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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