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달 입주인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 A-54블록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행복주택(임대아파트)은 요즘 대규모 공실을 해소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애초 생활 인프라가 훌륭한 신도시 입지라 청약 대박이 점쳐졌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지난해 10월 첫 청약 경쟁률은 2.8대 1(1,350가구 모집에 3,774명 지원)을 보였지만 정작 본계약에선 859가구가 미달했다.
모집 인원(784가구)이 가장 많은 원룸 아파트(전용면적 21·26㎡) 당첨자의 75%(590가구)가 무더기로 계약을 포기한 탓이다. 최근 추가 모집에 나섰지만 공실이 가장 많은 전용 21㎡(559가구) 경쟁률은 평균 1.1대 1에 그쳐 입주 후에도 상당수는 빈집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2. 지난해 2월 입주한 경북 포항블루밸리 행복주택. 입주 1년 차 새 아파트지만 현재 420가구 중 313가구가 공실이다. 빈집의 96%(302가구)는 원룸 아파트(21·26㎡)다. LH는 지난해 중순부터 소득·자산·무주택 요건(소형 주택만 허용)을 배제하는 등 입주 자격을 대폭 완화해 재청약에 나섰지만 공실은 그대로다.
행복주택은 정부가 LH를 통해 직접 지어 공급하는 공공임대 브랜드로 청년·신혼부부 같은 젊은 층에 전체 물량의 80%가 배정된다. 뛰어난 입지 등 장점이 많지만 정작 젊은 층이 외면하는 사례가 태반이다. 이처럼 행복주택을 비롯해 LH가 관리 중인 여러 임대주택 공실이 치솟으면서 LH는 올 상반기 임대주택 사업에서 1조 원 가까운 손실을 본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한국일보가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8월까지 입주자를 모집한 행복주택 2만1,593가구의 평균 계약률은 48%(1만377가구)로 집계됐다. 청약 당첨자의 절반 이상이 계약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행복주택은 가장 최근 선보인 신식 임대아파트인데도 같은 기간 5,200여 가구가 공급된 국민임대(계약률 52%)보다 계약률이 낮다.
계약률이 낮다는 건 그만큼 인기가 저조하다는 뜻이다. 인기가 떨어지다 보니 세입자를 제때 못 구해 6개월 이상 빈 채로 방치된 방도 수두룩하다.
행복주택은 2015년 첫선을 보인 뒤 올 상반기까지 총 11만8,452호가 공급됐다. 하지만 이 중 9%인 1만635호가 6개월 이상 세입자를 채우지 못한 장기 미임대로 남아 있다. 2019년(4.1%)에 견줘 장기 공실 비율이 2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도심에 짓는 덕에 입지가 좋고 임대료(원룸 평균 월세 10만 원 안팎)까지 저렴한데 행복주택 인기는 왜 저조한 걸까. 전용 26㎡ 이하의 원룸 위주 공급이 패착으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전체 행복주택(11만8,452가구) 중 58%인 6만8,521호가 원룸 아파트다.
아무리 임대주택이라 해도 수요자의 주거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이런 수요자 선호도와 관계없이 원룸만 대거 짓다 수요자 외면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토교통부와 LH도 인정한다. 정부도 최근 예산을 늘려 원룸 규모를 전용 20㎡ 수준(초창기 행복주택 전용 14·16㎡)까지 늘렸지만 인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렇다 보니 전체 유형 중 원룸 아파트 장기 공실 비율이 10.3%(방 2개 7%)로 유독 높다.
이 같은 행복주택 원룸은 정책 취지에 따라 청년·대학생·고령자 등에 배정된다. 방 2, 3개짜리인 전용 30㎡ 초과 아파트(4만9,931호)는 신혼부부·한부모가족에 주로 배정하고 아주 일부만 청년층에 공급한다. 나 홀로 가구임을 고려해 청년층에 원룸을 배정했지만, 청약 결과를 분석해 보면 청년층 수요는 방 2개짜리에 집중되는 걸 알 수 있다.
올 1월 추가 모집에 나선 화성동탄2 A-53블록 행복주택의 경우 대학·청년층에 배정된 전용 21㎡ 경쟁률은 3대 1에 그쳤지만 방 2개짜리인 전용 44㎡는 56가구 모집에 청년층 1,510명이 지원해 26대 1을 기록했다. 최근 추가 모집한 수원당수 행복주택 역시 원룸 경쟁률은 저조했지만, 전용 44㎡엔 청년층 2,077명이 몰려 148대 1을 기록했다. 행복주택의 초기 계약률을 따져봐도 방 2개짜리(66%)가 원룸(46%)보다 훨씬 높다.
한 20대 직장인은 "원룸형 임대료가 11만 원이고 투룸이 25만 원 수준이라 굳이 좁은 집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했다.
LH도 이런 추세를 반영해 추가 모집 땐 큰 면적 행복주택에도 청년·대학생 몫을 늘리고 있다. 문제는 임차 수요가 면적이 넓은 아파트에만 쏠리다 보니 원룸 아파트는 앞으로 빠르게 슬럼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LH는 빈집에 세입자를 들이려고 추가 모집 때마다 모집 기준을 완화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포항블루밸리 사례처럼 소득·자산·무주택 요건을 아예 안 보거나 공실이 아주 심한 단지는 1년간 '렌트 프리(월세 무료)' 혜택을 주기도 했다. 이렇게 올해 입주 자격을 풀어준 단지만 70여 곳에 이른다.
정부는 행복주택 공실을 해결하기 위해 원룸형 아파트 두 채를 하나로 합쳐 면적을 넓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화성동탄의 행복주택 원룸 8가구를 4가구로 축소하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며 내달 준공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다. 행복주택의 60%가 원룸인데 이를 다시 투룸으로 바꾸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인 진단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지방은 청년층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인데, 정작 행복주택 공급 대상자는 청년·신혼부부 등으로 고정돼 있다 보니 수요와 공급 미스매칭(불일치)으로 세입자를 못 구한 지역도 적지 않다. 현실에 맞게 행복주택 입주 기준을 손질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김 의원은 "정확한 진단 없이 두 채를 한 채로 합치는 식의 대안은 전형적인 공급자 마인드"라며 "정부는 임대주택 장기 공실 문제를 방치하지 말고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