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무주임~ 오늘 치맥 한잔 어때? 또로로록 딱! 캬아~”
“제가 아이를 봐야 해서…”
“서무주임~ 오늘은 퇴근하고 뭐해?”
“운동하러 가야 해서…”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직장 후배와 맥주 한 잔 기울이고 싶은데 자꾸 퇴짜를 맞으니 과장님이 단단히 토라졌다. 나중엔 후배가 먼저 맥주 마시자고 요청해도 “나도 애 볼 거거든”이라며 심술을 부린다. 후배가 재차 “그러지 말고 맥주축제 같이 가자”고 달래자, 그제야 과장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대체 그 맥주축제가 뭐길래 과장님 기분이 사르르 풀린 걸까. 시청자들도 영상을 보며 지역 맥주축제가 궁금해진다.
서울 강북구가 유튜브에 공개하는 콩트 시리즈 ‘공덜트’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5급 과장님과 7급 서무주임을 실감나게 연기하는 배우들은 실제 강북구청 직원들로, 본래 직급과 직책 그대로 등장한다. 누구나 공감할 직장 생활을 익살맞은 이야기와 ‘짠내’ 나는 연기로 풀어내 호응을 얻고 있다.
강북구 유튜브는 올해부터 ‘공덜트’ 시리즈와 함께 동네 맛집 먹방 시리즈, 공무원 브이로그 등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3,000명대이던 구독자수를 8개월 만에 8,260명으로 3배 가까이 불렸다. 서울 25개 자치구 유튜브 가운데 만년 꼴찌를 다퉜는데 어느새 9위다. 영상 제작 PD인 오광근 주무관은 “구독자수 1위 강남구를 내년까지 따라잡겠다”며 창작열을 불태웠다.
공무원이 ‘노잼’이라는 건 그야말로 편견이다. 강북구 유튜브를 비롯해 ‘엄근진(엄격ㆍ근엄ㆍ진지)’을 벗어던진 자치단체 유튜브들이 재기발랄한 창작 콘텐츠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각종 행사와 정책 홍보, 심지어 단체장 ‘말씀’까지도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되니 지루하지 않다. 지역 주민들과의 거리감도 확 좁혀졌다.
경북도가 운영하는 ‘보이소TV’도 구독자수 39만 명을 거느린 인기 채널이다.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하는 여행지 소개, 귀농ㆍ귀촌 현장 탐방, 귀여운 아기 동물 소개, 명사 특강 등 아이템도 다양하다. 한복 입고 경운기 타는 할아버지와 커피 마시는 할머니, 논두렁 한복 패션쇼 등 등 농촌마을 주민들이 직접 출연한 한복 영상은 3주 만에 조회수 130만 건을 찍었다. 700개 가까운 댓글들도 “경북이 힙하다” “어르신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등 칭찬 일색이다.
B급 감성은 지자체 유튜브가 내세우는 핵심 무기다. 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날짜와 같은 학급번호 학생이 발표자로 계속 지명되는 에피소드에 숫자 3이 연상되는 풍기인삼을 뜬금없이 녹여낸 경북 영주시 숏폼 영상은 무려 1,550만 명이 시청했다. 서울 강서구가 지자체 최초로 선보인 3D 가상 공무원 캐릭터 ‘새로미’는 “자기가 사는 지자체 유튜브를 구독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언론에 구정 기사가 부산 강서구로 나가기도 했다” 등 ‘셀프디스’를 쏟아내며 MZ 세대를 사로잡았다. 첨단 3D 캐릭터답지 않게 영상 음질은 매우 조악한 ‘병맛’이라, 구독자들은 “새 마이크 사주라”는 댓글을 달며 즐거워하고 있다.
새로미는 지자체 간 유튜브 경쟁이 치열해지게 된 ‘원흉’으로 충북 충주시 김선태 주무관을 지목했다. 김 주무관은 ‘유퀴즈’를 비롯해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섭외가 잇따르는 ‘유튜브계 슈퍼스타’다. 김 주무관이 혼자서 이끄는 ‘충TV’는 충주시 인구(20만 명) 두 배가 넘는 43만 명이 구독하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뉴진스가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서울시 유튜브(19만 명)도 가볍게 제쳤다. 다른 지자체는 물론 일반 기업들까지 벤치마킹할 정도다.
충TV에 추월당한 서울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충TV에 자극받아 ‘유튜브 예비 스타’ 발굴에 나섰다. 서울시청 직원을 대상으로 유튜버 선발대회를 개최한다. 1차 서류 심사를 거쳐 다음달 4일 숏폼 제작 및 발표회, 토크쇼, 퀴즈쇼 등을 주제로 결선을 치른다. 경제 유튜버 슈카와 유튜브 전문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최종 우승자에겐 유튜브 콘텐츠를 보고 없이 기획, 촬영, 편집, 업로드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고경인 서울시 홍보기획팀장은 “공무원이란 신분에 감춰둔 재능과 끼를 마음껏 펼쳐낼 원석을 찾아낼 것”이라며 “서울시 유튜브의 획기적인 변신을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