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전단' 다시 접경지역 휘날리나... 헌재, 금지법 위헌 결정

입력
2023.09.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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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발전법 '전단 살포 금지' 위헌
"표현의 자유를 매우 과도하게 침해"

북한 쪽으로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법안이 통과된 지 3년 만이다.

헌재는 26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등 단체들이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문제 조항은 남북관계발전법 제24조. 2020년 민주당의 주도로 신설된 이 조항은 ①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 ②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시각매개물 게시 ③전단 등 살포를 통해, 국민의 생명 및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런 행위들을 '남북합의서 위반행위'로 규정해, 위반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개정안이 공포된 날 한변과 북한인권단체 20여곳은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제한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번에 위헌이 나온 부분은 이 중에서도 전단을 금지한 제24조 1항 3호다. 헌재는 "해당 법조항이 제한하는 표현의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고,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할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헌재는 남북관계발전법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봤다. 상시 긴장상태인 북한 접경지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할 국가 의무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경고와 제지 등 유연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국가형벌권을 동원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법률로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에 위배된다"고 결론내렸다. 또 해당 조항이 "북한의 도발로 인한 책임을 전단 살포 행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책임주의의 원칙(행위자에게 비난가능성이 없다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보호할 더 적절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반대의견을 냈다. 김 재판관 등은 "경찰관 직무집행법만으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고, 살포 전 신고 의무 부과는 심판대상 조항과 동등한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해당 조항은 표현의 방법만을 제한하고 있고, 청구인들의 견해는 전단 살포 외의 기자회견이나 탈북자들과의 만남 등 다른 방식을 통해서도 충분히 표명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북 전단 금지 조항이 위헌으로 결론 나면서, 정부는 이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처리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지난해 11월 헌재에 "(해당 조항은) 표현의 자유 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최근 "(대북 전단을 금지하는) 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14년 10월 대북 전단이 든 풍선을 향해 북한이 고사총을 발사하는 등 전단 살포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보수·탈북자 단체의 전단 살포가 재개되는 경우 남북 관계의 경색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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