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2000조 시대' 눈앞... "대응 안 하면 매년 4~6% 늘어"

입력
2023.09.26 17:30
13면
2분기 GDP 대비 가계부채 101.7%
주택 구입 수요 고려하면 더 늘 수도
기업 부채도 외환·금융위기 수준 넘어
금융 안정 위험신호 켜져 관리 절실
'빚낸 고령층' 위한 노후 대책 필요

가계부채가 2,000조 원을 눈앞에 두는 등 증가세가 가팔라지면서 금융안정에 위험신호가 커지고 있다. 2분기 가계와 기업의 빚을 합한 민간 분야의 빚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26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26일 한국은행은 '금융안정 상황(2023년 9월)' 보고서를 내고 2분기 금융취약성지수(FVI)가 43.6으로 전분기(43.3) 대비 소폭 상승했다1고 발표했다. FVI는 대내외 충격 발생 시 금융시스템의 복원력을 판단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개발한 지표인데, 수치가 클수록 복원력이 약하다는 의미다. 2021년 2분기(59.3) 이후 꾸준히 내림세를 보였으나 8분기 만에 상승 전환했다.

한은은 금융 안정을 해치는 핵심 요인으로 가계 등 민간부채를 꼽았다. 한은은 가계부채 심각성을 판단할 때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살피는데, 이 역시 올해 2분기 101.5%에서 101.7%로 1년 만에 소폭 반등했다. 1분기 기준 선진국(73.4%)과 신흥국(48.4%)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기업부채까지 더한 명목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은 2분기 225.7%에 이른다. 우리나라 가계와 기업이 진 빚이 번 돈보다 2배 이상 많다는 뜻이다. 기업의 자금 수요 증가, 금융기관의 기업대출 취급 확대, 코로나19 금융지원 등으로 기업대출 또한 빠르게 불어난 결과다. 2분기 명목 GDP 대비 기업대출 비율은 124.1%로 외환위기(113.6%)와 금융위기(99.6%) 당시 수준을 넘어섰다.

한은의 경고... "일관되고 꾸준한 정책 절실"


"부채는 꾸준하고 일관된 정책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게 통념이다. 특히 가계부채는 기업부채보다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정책적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기업부채는 구조조정으로 빚을 탕감하거나 타 기업에 인수시키는 등 공권력을 동원한 방법을 쓸 수 있지만, 가계부채는 개인이 대출받은 것이라 조정이 어렵다"며 정책 의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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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한은은 이날 "정책 대응이 없다면 가계부채는 향후 3년간 매년 4~6% 정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가계의 주택 구입 수요, 부동산 공급 대책,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부동산 금융 규제 수준 등을 고려한 분석이다. 2분기 가계부채(1,862조8,000억 원)를 기준으로 매년 6%씩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2년 뒤 2,000조 원을 돌파하고, 3년 뒤엔 2,218조6,000억 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인구 금융안정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대출 수요를 보면 올해 2분기를 기점으로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상승세를 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빚내서 노후자금 마련하는 고령층

단기 대책으로 한은은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주범으로 지목했던 "특례보금자리론, 장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인터넷전문은행 대출을 중점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특례보금자리론, 50년 주담대에 관한 당국 정책이 잘 지켜진다면 과도한 대출 증가세는 개선될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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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기적으로는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해 주택 공급을 관리하는 한편, 분할상환 대출 확대 등으로 가계부채의 질적 개선을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날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공급 대책에 관해 이종렬 부총재보는 "결과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지켜봐야겠지만, 공급 활성화 대책이라 주택시장의 가격 기대심리를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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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추가로 "역모기지(주택연금)2, 연금제도 등을 통해 고령층의 노후자금 조달여력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는 대출 문턱이 낮아진 틈새를 이용해 실거주용 주택을 사려는 30대 이하 청년층이 주도했지만, 심각한 채무부담에 허덕이는 것은 60대 이상 고령층이기 때문이다. 청년층은 만기를 길게 잡거나 체증식 상환 방식을 선택해 초기 상환부담을 낮춘 반면, 고령층은 노후 벌이를 위해 자영업에 뛰어들거나 상업용 부동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개인사업자대출을 늘리고 있다. 2분기 청년층의 소득대비대출비율(LTI)은 262%인 데 비해, 고령층은 350%에 달한다.

1 2분기 금융취약성지수(FVI)가 43.6으로 전분기(43.3) 대비 소폭 상승했다
단기 금융불안 수준을 평가하는 금융불안지수(FSI)도 2개월 연속 소폭 상승했다. 한국은행은 "물가가 다시 오르고 있고, 미국 등 주요국이 고금리 기조를 더 오래 유지하겠다고 밝히면서 달러 가치가 치솟고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가 하락한 영향"으로 풀이한다.
2 역모기지(주택연금)
보유하고 있는 주택을 담보로 제공하면 금융기관에서 매월 일정액을 연금처럼 받는 상품. 주택을 사기 위해 장기대출을 받아 원리금을 상환하는 전통 모기지론과 상반된 형태의 상품이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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