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화병(火病)이라 불리는 증상이 있다. 화를 참는 일이 반복되어 발생하는 일종의 ‘신경성 신체화 장애’이다. 불안, 우울, 불면증, 호흡곤란, 식욕 저하 혹은 폭식, 소화불량 등의 신체화 증상과 더불어 분노와 억울함을 주로 호소한다. 미국 정신의학회가 정신질환 통계 관련 최신 정보를 담아 발간한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4판(DSM-Ⅳ, 1994)에 질서와 조화를 중시하는 가부장적 문화권에서 자주 관찰되는 ‘문화 관련 장애’ 중 하나로 등록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특정 문화권에서 일관되게 발견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개정된 제5판(DSM-5, 2013)에서는 삭제됐다. 따라서 현재는 위에 열거한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 공식적으로 ‘우울장애’, ‘불안장애’, 또는 ‘스트레스 관련 장애’ 등으로 진단을 내린다.
5년마다 시행되는 정신건강실태조사 최신 자료(보건복지부, 2021)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성인의 정신장애 1년 유병률(지난 1년 동안 정신장애를 한번 이상 경험한 적이 있는 비율)은 남성 9.7%, 여성 8.4%로 남성이 여성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알코올과 니코틴 등 물질 관련 장애를 제외하면, 남성의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유병률은 각각 1.1%와 1.6%인 데 반해 여성은 2.4%와 4.7%로 전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장애는 2.2배, 불안장애는 2.9배 더 많이 경험하고 있다. 중년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우울장애 유병률은 30대 1.5%, 40대 1.5%, 50대 1.8%이며, 불안장애의 유병률은 30대 3.6%, 40대 2.7%, 50대 3.7%로 나타났다.
진단명이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사건에 대한 자신의 정서 반응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장애 진단을 받을 정도로 증상이 심각해질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힘든 사건은 일어나기 마련이며, 그에 따라 발생하는 부정적 정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때 부정 정서를 습관적으로 억압하거나,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표출하는 경우,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등의 정서 관련 정신장애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방치하다가 중년기에 이르러 만성화가 되어서야 병원을 찾기에 약물 처방이 내려지기 쉽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심리적인 요인이 원인이다. 따라서 심각해지기 전에 미리 예방할 수 있기도 한 것이다.
미국 보스턴대 데이비드 발로우 교수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부정적 정서를 억압한 사람들이 실제로는 오히려 부정적 정서 경험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실험연구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이 연구의 시사점은 부정적인 정서를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수용하는 것이 정신장애 예방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분노, 불안, 우울,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는 전문가들의 권고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불쾌하고 감당하기 어려울지라도, 그 감정은 내 경험의 일부이자, 나 자신의 일부라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늪에 빠졌을 때 허우적일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것을 모두가 알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투쟁의 대상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자기의 일부’로 보듬는 지혜가 필요하다.
펜실베이니아대 마틴 셀리그만 교수는 긍정적 정서 경험을 늘려가는 것이 정신장애 예방에는 물론, 정신적 웰빙과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학자이다.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긍정적인 정서를 맛볼 수 있는 시도를 실행에 옮기는 것의 효과를 확인한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대 바버라 프레드릭슨 교수는 다양한 분석연구를 통해 긍정적 정서 경험이 부정적 정서 경험보다 적어도 3배 이상은 되어야, 정신장애에 걸릴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저명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중년기에 자산 관리만큼 중요한 것이 정서 관리임은 분명하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부정적인 일을 모두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불쾌한 정서 경험을 상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긍정적인 정서 경험을 위해 무언가 ‘작지만 확실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적립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