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박빙 대결이었던 미국 대선 구도에 균열이 생길 조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10%포인트 가까운 격차로 이긴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4일(현지시간)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을 누리기는커녕 현직 대통령의 중압감에 치인 모양새다. 고금리·고물가로 인한 어두운 경제 전망,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여론의 피로감, 연방정부 셧다운(업무 일시 중지) 위기, 자동차 노조 파업, 중남미 출신 이민자 급증 등의 리스크가 그의 지지율을 깎아내리고 있다.
여론조사 한 건으로 속단하긴 이르지만, 2017년 1월부터 4년간 미국 대통령을 지내고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ABC방송은 이달 20일(현지시간) "지금 당장 대선 투표를 한다면 누구를 찍겠느냐"고 묻는 방식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상 양자 대결을 붙였다. 24일 공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각각 42%와 51%였다. 접전 양상이던 최근 다른 조사들과 다른 결과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51%라는 지지율은 의미심장하다.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그의 득표율은 각각 46%, 47%였고,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이 50%를 넘긴 경우는 많지 않았다. 미국 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형사기소를 당하고 기소 건수도 4차례에 달하지만 오히려 지지층이 확장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에겐 적신호가 켜졌다. 이번 조사에서 그는 35세 미만 유권자 사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20%포인트 차이로 밀렸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몰표를 준 유권자 집단이다.
이번 조사 결과가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은 '튀는 결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WP는 “다른 조사와 상충하는 만큼 특이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고, ABC도 “(결과를) 면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하락세라는 징후는 뚜렷하다. 24일 공개된 미국 NBC방송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는 임기 중 최고치인 56%를 기록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최대 악재는 경제다. 그의 경제 정책에 대한 지지율은 이번 조사에서 임기 중 최저인 30%까지 떨어졌다.
앞으로도 첩첩산중이다. 24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행정부 앞에 놓인 4가지 경제 분야 위협 요인을 짚었다. 자동차 노조 파업이 확대되면 자동차 가격 상승과 실업이 초래될 수 있다. 이달 말 연방정부 예산 의회 처리 시한을 앞두고 공화당이 지출 대폭 삭감을 요구하며 버티고 있어 연방정부 셧다운도 현실화할 위기다. 고금리 장기화 우려 속에 유가가 다시 치솟은 것도, 다음 달 대학 졸업생 4,380만 명의 학자금 대출 상환이 돌아오는 것도 악재다.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네 살 많은 나이도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WP·ABC 조사에서 "(올해 80세인) 바이든 대통령이 (2025년 1월부터인) 다음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기엔 너무 나이 들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74%였다. 76세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같은 우려를 한 답변자가 50%였다.
경쟁자의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민한 선거 전략이다. 미국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24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국가적 쟁점인 임신중지(낙태), 이민, (러시아 침공에 의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루는 양상이 흥미롭다”며 “돛을 유권자 구미에 맞춰 조정하거나 여론이 그가 있는 쪽으로 움직이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노련한 포퓰리스트의 면모가 보인다는 뜻이다.
임신중지 관련 입장 결정 유보는 여론에 입장을 맞춘 경우다. 여성들의 임신중지 권한 자격 박탈을 이끌어 낸 연방대법원의 보수화가 자기 공로라는 점을 부각해 집토끼를 지키는 동시에,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론으로 중도 유권자 포섭에 나섰다고 더힐은 짚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민자에 인색하고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에 반대하는 것 역시 중도층이 반길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