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잣대는 국산신약 개발에 찬물

입력
2023.09.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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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9월 들어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을 2급에서 4급으로 낮췄다. 하지만 변이가 심한 RNA 바이러스 계열인 코로나19는 변종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어 국민적 우려와 불안이 좀체 걷히질 않고 있다. 최근에는 `피롤라(Pirola)’라는 변이까지 등장해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코로나19는 금세기에 출현한 그 어떤 감염병보다 변이가 심해서 변이를 잡지 못하는 한 위기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변이 출현에 백신은 mRNA 백신으로 한 발 늦게나마 쫓아간다. 플랫폼 약물인 mRNA 백신은 면역 형성에 필요한 항원 단백질의 설계도를 변이에 맞추면 개량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고 바이러스 변종이 나타날 때마다 백신을 계속 접종하기는 어렵다. 부작용 우려로 백신 접종을 아예 기피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치료제 쪽은 더욱 심각하다. 치료제라고는 델타 대유행 당시 노인 등 고위험군용으로 나온 팍스로비드와 라게브리오 뿐이다. 표준위험군에는 치료제가 아예 없다. 병용금기약물이 37종인 팍스로비드는 고위험군에서도 처방 대상이 제한되고, 라게브리오는 낮은 효능 때문에 퇴출 직전이다. 국민의 선택권을 넓히려면 변이까지 잡는 새로운 치료제 확보가 시급하다. RNA 바이러스 팬데믹의 해결사는 백신이 아니라 치료제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과거 신종플루 대유행 당시에도 치료제(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가 사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 타미플루 등장 이후 백신 수요는 종전의 10~20%대로 격감했다고 한다.

기존 약물보다 나은 새로운 치료제가 등장한다면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세계가 항바이러스제를 무기화하는 추세임을 생각하면 국산 치료제 발굴과 확보 노력도 중요하다. 일본 정부가 효능 논란을 빚은 조코바를 일본산 치료제라고 총력지원해 긴급사용승인까지 내준 사실을 보라. 현재 일본 시장에서 조코바 점유율이 70%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일본보다 1년여 앞선 2021년 3월 국산 신약에도 적용 가능한 긴급 사용승인제도를 담은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료제품의 개발 촉진 및 긴급 공급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었다.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긴급히 필요한 약을 대상으로 정부가 공식 허가를 면제, 한시적으로 해당 약을 사용할 수 있게 허가해주는 제도다. 보건당국은 최근에도 긴급승인을 거쳐 외국산 백신을 추가 구매했다. 코로나19를 여전히 ‘긴급한’ 상황으로 본다는 증거다.

그런데 그동안 긴급 승인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모두 미국 등 외국산 위주여서 국내 개발 신약과는 차별이 되는 이중잣대’ 논란이 빚어지는 모양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자국의 신약에 적용하는 긴급승인 제도에는 미국산 의약품의 세계시장 선점 전략이 숨어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에 우리 보건당국이 미국의 신약과 국내의 신약을 이중잣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국내 신약 개발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이중잣대 논란을 해소하려면 규제기관이 약물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따질 경우 기존 외국산 약 사용승인때 적용한 글로벌 기준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전병율 대한보건협회 회장·전 질병관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