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지난 9일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엔 이 함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룹 god의 2만여 팬들은 그룹의 대표곡 '어머님께'(1999)를 다섯 멤버보다 더 크게 불렀다. 관객이 주인공이 된 공연은 KBS2 추석 특집쇼 'ㅇㅁㄷ god'.
이 공연을 뜨겁게 달군 '어머님께'는 god 맏형 박준형의 어린 시절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노래다. 사연은 이랬다. 미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박준형에게 어머니는 어느 날 쿠킹포일에 싸인 잡채를 건넸다. 일하던 어머니가 직장 점심시간에 한국인 동료가 싸 온 잡채를 먹지 않고 따로 챙겨 아들 학교 갔다 오면 먹으라고 내준 음식이었다.
"엄마 안 먹어?" 박준형이 이렇게 묻자 그의 어머니는 "잡채 싫어해"라며 아들에게 다시 잡채를 권했다. 아들은 어렸지만 차마 그 잡채를 혼자 먹지 못했다. 박준형이 잡채를 먹지 않고 놔두자 그의 어머니는 이번엔 아들의 학교 점심 도시락에 넣어 줬다. 이 애틋한 모자의 사랑에 찬물을 끼얹은 건 철없는 아이들이었다. "이게 뭐야?" 잡채를 처음 본 미국인 학생들이 박준형을 놀리며 도시락에 침을 뱉었다. 참다못한 박준형은 그 미국인 학생과 다퉜다. 박준형의 어머니는 결국 아들 학교로 불려 왔다. 가수 박진영이 이 얘기를 박준형에게 듣고 쓴 곡이 바로 '어머님께'다. 이 곡을 듣고 울며 집으로 돌아온 가출 청소년도 여럿이었다고 한다.
이 쇼를 연출한 이명섭 PD는 "god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을 법한 이야기를 노래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었다"며 "손에 닿지 않는 아이돌 같은 느낌이 아니라 동네 형, 오빠 같은 사람들이 인기를 얻고 그 과정을 지켜본 시청자도 용기를 얻고 우리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 god를 섭외했다"고 말했다. 나훈아, 임영웅 그리고 송골매에 이어 god가 KBS 명절 특집쇼의 새 주인공이 된 배경이다. god는 이 공연에서 '프라이데이 나이트'를 비롯해 '거짓말' '관찰'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애수' 등의 히트곡을 연달아 부르며 관객과 뜨겁게 소통했다.
god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고생 끝에 데뷔했다. 1990년대 경기 일산의 반지하에서 숙소 생활을 하던 그들은 혈기왕성하던 때 식비가 부족해 집 주변 옥수수밭에서 옥수수를 서리해 끼니를 때웠다. 새우깡을 냄비에 물 넣고 소금 풀어서 죽을 해 먹고, 화장실에 온수가 안 나와 걸어서 한 시간 거리의 병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씻고 나와 데뷔를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산전수전을 겪고 데뷔한 그룹의 추석 특집쇼엔 역경을 딛고 일어선 연인도 초대됐다. 2일 결혼한 한 부부는 신혼여행까지 포기하고 이 공연에 참여했다. 대장암 판정을 받고 3년 동안 투병할 때 남자친구의 옆을 여자친구가 항상 지켜줬고, 그 덕에 올 초 완치돼 웨딩마치를 울린 부부였다. god가 손에 닿을 수 있는 곳에서 행복을 찾은 분들과 함께 이 쇼를 꾸리고 싶다고 해 사연을 접수해 이뤄진 이벤트였다.
2004년 멤버 윤계상이 팀을 떠나고 2005년 그룹 활동을 중단한 god는 2014년 재결합했다. 오해가 쌓여 불거진 불화, 각기 다른 소속사에 적을 둬 여러 우여곡절을 딛고 재결합 공연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윤계상이 뇌수막염으로 입원했다. 오랜만에 성사되는 공연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기력이 뚝 떨어진 탓이었다. 올해 god 다섯 멤버의 평균 나이는 만으로 45.8세. 어느덧 중년이 된 그들은 춤을 추며 150분여 동안 이뤄진 공연에서 무대를 쉼 없이 누볐다. 이 PD는 "공연 끝나고 멤버들이 모두 똑같이 한 말이 '너무 힘들다' '우리가 언제까지 춤을 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였다"고 웃으며 "어떤 분이 'god는 팬덤과 추억이 공존하는 유일한 그룹'이라고 했는데 다양한 세대가 편히 즐길 수 있는 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8일 오후 8시 50분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