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 손님에게 '종이컵 대접'…장례식장 일회용품 왜 사라지지 않을까

입력
2023.09.27 04:30
17면
[쓰레기 박사의 쓰레기 이야기]
일회용품 사용 금지 장례식장만 예외 
정부가 다회용기 사용 지원 나서야

편집자주

그러잖아도 심각했던 쓰레기 문제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문제는 생태계 파괴뿐 아니라 주민 간, 지역 간, 나라 간 싸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쓰레기 박사' 의 눈으로 쓰레기 문제의 핵심과 해법을 짚어보려 합니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지금 우리 곁의 쓰레기'의 저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한국일보>에 2주 단위로 수요일 연재합니다.

우리나라는 손님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경우 매장 내에서는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단 한 곳만 예외다. 바로 장례식장이다. 2021년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었지만 역시나 올해 초 통과된 개정 법률내용에서는 결국 빠졌다.

결혼식장에서는 일회용품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왜 장례식장에서는 사라지지 않을까?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게 우리 민족의 오래된 문화일 리 없다. 오히려 문상 온 손님에게 일회용 그릇에 음식을 담아서 제공하는 것이 우리 정서에 반하는 무례하고 상스러운 짓이 아닐까?

다회용기를 빌려주고 세척까지 해주는 대안 서비스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식사의 품격도 올라가고 환경도 살리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분명하다.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장례식장 모두 일관되게 쓰레기 발생량이 70% 이상 줄어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왜 정부와 국회는 장례식장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지 못할까?

일회용품을 상주에게 팔아서 수익을 올리고 싶은 장례식장, 일회용품을 공짜로 제공하는 노조, 일회용품 제공 상품을 파는 상조회사 등 장례식장 일회용품에 얽힌 이해관계자가 많은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익동맹은 명확한 반면 변화를 이끌어 갈 정부의 의지는 무력하다.

이익동맹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 그리 동맹이 공고한 것도 아니다. 정부의 일회용품 금지 방침이 확고하다면 조금씩 불만은 있겠지만 다회용기 대안 서비스를 받아들일 것이다. 장례식장은 다회용기 서비스를 판매하고, 노동조합도 조합원들에게 조합과 계약된 다회용기 서비스를 지원하고, 상조회사도 다회용기를 이용할 수 있는 상조상품을 판매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한국소비자원과 한국장례협회 조사에 따르면 장례식장의 평균 조문객 수는 250명 내외라고 한다. 250명 조문객을 접대하는 데 사용되는 일회용품 비용은 18만 원인 반면 다회용기 서비스를 이용하면 28만 원이다. 1.5배 정도 비싸기는 하지만 10만 원의 추가 부담은 장례식장 총비용을 생각하면 심리적으로 큰 부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손님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쓰레기가 줄어드는 효과까지 감안하면 충분히 수용가능하다. 정부와 지자체가 세척 비용을 일부 지원하며,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용기 통일 등을 통해서 세척 효율을 높인다면 20만 원 내외로 단가를 바로 낮출 수도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불편하게 식사를 하고 눅눅해진 종이컵에 술을 따라 마실 게 아니라 제대로 식사를 하는 게 낫지 않나? 상주나 문상객 모두 일회용품 쓰레기를 늘리는 데 일조하는 양심의 거리낌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된 게 아닐까?

전국적으로 자활기관을 중심으로 다회용기 세척사업이 확산되고 있지만 환경부는 여전히 규제강화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규제가 강화되어야 다회용기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세척 단가가 떨어지며 소비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규제가 지금처럼 느슨한 상태에서 일회용기와 경쟁하라고 한다면 다회용기 사업은 조금 반짝하다 곧 주저앉게 될 것이다.

장례식장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 금지시키자. 대안이 존재하는데 굳이 장례식장을 예외로 할 필요는 없다. 국회나 환경부 모두 이제 일 좀 하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