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임제 구조에서 차기 대선 잠룡은 늘 정치권의 뜨거운 관심사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잠룡의 역할론도 거론된다. 그런데 정권 초부터 유력한 미래권력으로 떠오르는 것은 '양날의 검'일 수 있다. 일찌감치 대세론을 형성해 경쟁자들을 따돌릴 수 있는 반면, 장기간 상대의 견제에 노출되면서 상처를 입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거엔 어땠는지 살펴봤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일찍 떠오른 잠룡들은 초반 페이스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한국갤럽이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실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2019년 9월) 결과를 보자. 1위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로 21%를 얻었고, 2위는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로 14%였다. 이들 양강은 당시만 해도 이재명 경기지사(8%), 조국 청와대 전 민정수석(6%), 박원순 서울시장·심상정 정의당 대표·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5%) 등의 경쟁자들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하지만 이낙연·황교안 두 사람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실시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각각 고배를 마셨다.
노무현 정부 초기 잠룡들도 뒷심이 부족했다. 노 대통령 취임 1년 2개월 뒤인 2004년 4월 발표된 문화일보·TNS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 결과,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 26.4%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15.2%), 3위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6.9%)이었다. 하지만 2007년 17대 대선의 승자는 해당 여론조사에서 6.8%를 얻으며 4위에 머물렀던 이명박 서울시장이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정권 초부터 유력한 차기 주자가 되면 진영 안팎의 견제가 심해져 상처를 많이 입는 데다 지지자들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기가 어려워 막판에 힘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분석했다.
정권 초 유력한 잠룡이 기세를 몰아 대권에 안착한 사례도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갤럽이 처음 실시한 차기 지도자 선호도 조사는 2014년 8월이었다. 당시 조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4%로 박원순 서울시장(17%)에 이어 2위였다. 이후에도 차기 조사에서 상위권을 지켰던 문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실시된 2017년 19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2014년 8월 조사에서 3위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13%), 4위는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9%)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선 어땠을까.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인 2009년 2월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를 보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33.4%를 얻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2, 3위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8.2%)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5.4%)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박근혜 의원은 초반부터 구축한 대세론을 지키면서 2012년 18대 대선에서 당선됐다.
지금은 어떨까. 3개월에 한 번씩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를 실시하는 한국갤럽의 9월 초 조사(9월 5~7일 실시)에서 1위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19%)가 차지했고, 2위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으로 12%였다. 이 대표는 2020년 말부터 야권에서 1위 주자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있다. 한 장관도 지난해 9월 이후 여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정치인이 아닌 한 장관이 여권 잠룡 중 선호도 1위를 지키는 것은 이례적이다.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주자들에 대한 선호도는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각각 3%였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김동연 경기지사,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각 2%를 기록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과 이탄희 민주당 의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각각 선호도 1%였다.
한국갤럽이 지난 12~14일 조사한 '정계 주요 인물 호감도 조사'의 순위는 조금 달랐다. 호감도는 앞으로 지지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력을 뜻한다. 1위는 오세훈 시장(35%)으로 조사 대상 8명 중 가장 높았다. 이어 한동훈 장관이 33%, 홍준표 시장이 30%로 2, 3위였다. 야권 인사 중에선 김동연 지사와 이재명 대표가 각각 29%로 상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 대표는 비호감도가 61%로 김 지사(41%)보다 20%포인트 높았다.
반대 진영에서 호감도가 유독 높은 인물들도 있다. 이들 역시 외연 확장의 잠재력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여권에선 홍준표 시장이 진보 응답자 사이에서 호감도(25%)가 가장 높았다. 반면 한동훈 장관은 진보 응답자의 12%만 호감을 보였다. 오세훈 시장은 진보 응답자의 17%가 호감을 보였다.
야권에서는 김동연 지사가 보수 응답자 22%로부터 호감 평가를 받았다. 이와 달리 이재명 대표에게 호감이 간다는 보수 응답자는 13%에 머물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