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은 유통업계에서도 친환경으로의 탈바꿈이 매우 중요한 분야로 꼽혀왔다. 매일 쓰는 소모품으로 제품 교체 주기가 빠르고 특히 플라스틱을 많이 쓰기 때문. 그러나 피부에 직접 닿는 내용물이 빛이나 열에 의해 변질될 우려가 커 브랜드 신뢰도가 중요한 화장품 업계에선 화장품 용기의 소재를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더구나 업계가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복잡한 구조의 용기를 많이 선보이면서 재활용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추세다.
LG생활건강은 화장품 업계 최초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원료로 친환경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유통업계에서 화학적 재활용 페트(CR-PET)를 생수 용기 등으로 재활용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활용해 용기를 만들고 여기에 화장품을 담아 유통하는 것은 이 회사가 처음이다. CR-PET는 사용하고 버린 페트병을 화학적으로 분해해 원료로 되돌린 후 다시 결합해 고품질 페트로 생산하는 기술이다.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재활용은 플라스틱 종류에 상관없이 300~500도의 고온·고압에서 분해해 기름을 만들고 여기서 나프타 등을 뽑아 새 플라스틱을 만드는 연료로 쓰인다. 복합 재질로 재활용이 어려운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도 활용 가능한 것이 강점이다. 또 버려진 플라스틱을 태우지 않고 원료로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드는 효과도 크다.
품질도 일반 플라스틱과 같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로 만든 용기는 일반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과 성질이 같다"며 "친환경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내용물 변질 없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체재인 셈"이라고 말했다.
폐플라스픽 열분해유를 적용한 재생 플라스틱 용기는 3월 LG생활건강의 클린뷰티 브랜드인 비욘드의 '엔젤 아쿠아 크림 2종 러브어스 에디션'에 처음 적용됐다. 해당 제품의 경우 기존 용기 재질이 PP이면서 용기의 모양이 단순해 다른 제품보다 재생 플라스틱 용기를 활용하기 수월했다. 특히 '피부에 순하고, 지구는 깨끗하게'라는 콘셉트로 제조 과정부터 동물성 원료를 배제한 비건 제품이라 재생 플라스틱 용기에 가장 어울린다는 판단이었다.
회사는 엔젤 아쿠아 크림에 같은 용량의 리필 파우치도 구성품으로 넣었는데 가성비가 높아지면서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가치 소비를 즐기는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재활용 용기를 사용한 제품에도 거부감 없이 구매가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재활용 용기 제품도 구매가 활발해 적용 제품을 늘릴 계획"이라며 "신제품 개발 시 재활용이 얼마나 쉽게 가능한지 필수로 검토하고 있으며 기존 제품도 재활용 용기로 바꾸는 게 가능한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은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용기의 소재를 단순화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열분해 방식이 아닌 물리적 재활용 소재(MR-PCR), 바이오 매스를 활용한 바이오 소재 등에 대한 연구 및 제품화도 시도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또 2021년부터 글로벌 코카콜라 본사가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을 목표로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용기 경량화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회사는 국내에서 코카콜라 유통을 맡고 있다.
용기 경량화 프로젝트는 무균 충진 제품이나 탄산 제품 등 10종 용기의 무게를 줄이는 게 목표다. 회사는 지난해 1월 무균 충진 제품 900ml 용기의 중량을 44g에서 33g으로 11g 줄였다. 그해 10월에는 탄산 제품 350ml 용기의 중량을 31.6g에서 24g으로 7.6g 축소했다. 올해는 세 종류의 코카콜라 용기 무게를 추가로 감량했다.
LG생활건강은 코카콜라 용기 무게 감량으로 연간 4,940톤의 온실가스가 저감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2024년까지 순차적으로 남은 용기에 대해 경량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회사는 소비자가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소비자가 사용한 화장품 용기를 매장에 반납하면 포인트를 지급하는 식으로 혜택을 주고 있다. 회수한 용기는 재활용 업체를 통해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다시 활용한다. 사내에서는 친환경 포장을 내재화하기 위해 '그린제품 심의협의회'도 운영한다. 심의협의회에서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친환경성 평가지표 '그린패키징 가이드'를 활용해 친환경 포장재를 개발하고 제품에 적용한다. 제품 개발 단계부터 디자인, 포장연구, 구매 등의 부서들이 모여 친환경 포장재 적용을 고민하는 것이다.
아울러 LG생활건강은 파라벤 무첨가, 플라스틱 포장재 저감, 비건 등 인체에 안전한 성분으로 만들고 공정 무역을 통해 원료를 수급하는 '클린뷰티' 경영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2021년 세운 클린뷰티 연구소에서는 화장품 포장재를 재활용, 재사용, 감량, 대체까지 네 가지 관점에서 연구한다. 합성 원료 대신 천연 유래 원료를 사용한 화장품을 만들며 탄소 발생을 줄이는 에너지 저감 공정 연구도 진행 중이다.
클린뷰티 연구소의 연구를 바탕으로 '클린뷰티지수'도 독자 개발했다. 이 지수는 지구 환경, 인체 건강, 정직한 과학, 이웃과 상생까지 총 네 가지 분류 기준에 12개의 세부 항목별 가중치를 더해 정량화한 지표다. 회사는 이 지수를 빌리프, 비욘드 등 클린뷰티를 추구하는 브랜드에 우선 적용하고 제품별로 지수를 높여 기준치에 맞는 제품을 출시한다.
클린뷰티지수는 모든 브랜드로 적용 대상을 늘릴 방침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친환경 제조·판매 시스템을 갖춘 뷰티 브랜드로 거듭나는 것이 시장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며 "친환경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술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연구 및 제품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