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진도 8.8. 모로코를 120년 만에 덮친 최대 규모 지진이었다고 합니다. 자연히 진앙지와 가까운 모로코 남서부 지역 도시들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요. 특히 △마르케시 △알 하우즈 △칙 차오우아 △와르자트 △아지즈랄 등 6개 지역에선 2,930곳 마을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합니다. 5만9,000여 채 주택이 피해를 입었고, 3채 중 1채(32%)가 완전히 붕괴될 만큼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모로코 정부는 이번 지진으로 발생한 사상자가 9,000명 이상이라고 밝혔습니다.
끔찍한 재난에 전 세계 각국에서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금전적 지원은 물론이고, 대피 주민들이 절실히 바랄 각종 식료품과 의료 품목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모로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붕괴된 현장에서 직접 실종자를 찾아내고, 매몰된 사망자들을 수습할 ‘전문가’ 파견을 자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단순한 자금과 물품 지원을 넘어, 직접 사고 수습에 힘을 보태겠다는 선의를 밝힌 겁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시 ‘해외긴급구호대’을 구성, 모로코에 파견하겠다고 나선 국가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번 모로코처럼 대지진이나 대홍수 같은 큰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언론을 통해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 파견 결정’을 제목으로 하는 보도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느 정도 눈과 귀에 익어버린 ‘해외긴급구호대’이지만, 대한민국이 해외 재난에 이처럼 구호대를 파견한 건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정부가 해외긴급구호대를 창설한 건 16년 전인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해외에서 대규모의 재난이 발생할 경우 인명구조나 재난구호에 기여하겠다’는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구호대는 말 그대로 재난 현장의 구호와 지원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해외긴급구호대장을 필두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국, 수색이나 구조 등 현장을 발로 뛰어야 하는 구조팀과 의료팀으로 구성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재난의 성격에 따라 구호대의 성격은 조금 달라집니다. 수색 구조를 주로 할 것이냐 아니면 의료 활동을 중심으로 활동할 것이냐에 따라 구조팀과 의료팀 비중을 조금 달리하게 됩니다. 구호대 측은 이를 ‘탐색구조 작전’ 중심 혹은 ‘의료작전’ 중심으로 구분한다고 설명을 합니다. 예컨대 2014년 서아프리카 지역의 에볼라 창궐에 투입됐던 구호대는 의료팀이 주를 이룬 반면, 2023년 튀르키예 대지진의 경우엔 구조팀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졌습니다.
해외긴급구호대는 외교부와 국방부, 보건복지부(국립중앙의료원), 소방청(중앙119구조본부), 한국국제협력단 등 여러 관계 부처의 협업으로 이뤄집니다. 구호단 구성과 관리를 총괄하는 외교부를 중심으로, 군 소송기 등 파견 인력과 물자를 신속하게 수송하는 임무를 맡는 국방부, 구조팀과 의료팀 인원이 소속된 소방청과 복지부, 각종 지원업무를 수행하는 협력단 등입니다.
그렇다면, 구호대 파견은 어떤 절차를 통해 이뤄질까요. 일단 재난 상황 파악이 우선이겠죠. 관련 법은 해외 재난 중 인명피해 또는 재산손실의 규모 등을 고려한 피해 규모가 광범위해 국제사회의 지원이 요구된다고 외교부 장관이 인정하는 재난을 '파견 대상 재난'으로 규정합니다. 언론 보도 모니터링 또는 해외 공관 보고 등을 통해 ‘대규모 해외 재난’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게 첫 번째 단계입니다.
구호대를 보내야 할 재난이라고 판단이 된다면, 그때부터는 '스피드'가 중요합니다. 먼저 ‘피해국 정부’에 "우리 쪽에서 구호대를 보내겠다"는 의사를 전하게 됩니다. 접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죠. 외교부에서는 "돕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다른 주권국가의 국경을 넘을 수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무엇보다 구호대 입장에서는 ‘골든 타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통은 재난 발생 시점으로부터 72시간 전에 구조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고 합니다. 피해 상황 파악이나 피해국 정부로부터 '구호대 파견을 원한다'는 답을 듣고서 구호대를 준비하면 늦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2023년 튀르키예 대지진의 경우만 봐도, 한국에서 튀르키예까지 비행 시간만 12시간 걸렸고 공항에서 지진 현장까지 이동한 시간이 21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난 상황이 파악된 직후 구호대는 곧바로 꾸려지게 됩니다. 외교부를 중심으로 한 행정적인 절차와 함께 '투트랙'으로 준비 작업이 진행되는 셈입니다. 그 시작은 외교장관이 주재하는, 관계부처와 민간 기관 관계자들이 참가하는 민관합동개회긴급구호협의회입니다. 파견과 지원 규모 등 내용을 심의한 뒤 긴급구호대장을 포함한 구호대 명단을 꾸리고, 입국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확인하는 등 준비 작업에 들어갑니다. 구호대원들에게도 곧바로 공지가 갑니다. 평소 자원을 통해 확보한 구조팀과 의료팀 등 인원들에게 'OO일 OO시까지 OO로 출발 준비를 하고 모일 것'이라는 식의 공지입니다.
이런 식으로 꾸려진 해외긴급구호대는 2008년 5월 중국 쓰촨성 대지진(44명)을 시작으로2013년 필리핀 태풍 피해(127명), 2015년 4월 네팔 대지진(47명), 가장 최근인 2023년 7월 캐나다 산불 진화(151명)까지 지난 16년 동안 10번에 걸쳐 해외 재난 지역에 파견돼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번 모로코 대지진의 경우, 대한민국의 해외긴급구호대는 파견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모로코 쪽에서 스페인과 카타르, 영국 등 일부 국가의 인도주의적 지원만 받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인데요. 지난 2004년 지진 발생 당시 지나치게 많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았다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일부를 폐기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한 경험 때문이라는 등 배경을 두고 여러 얘기가 나오지만, 분명한 건 그 결정이 전적으로 피해 국가의 몫이라는 겁니다.
비록 구호대 파견이 안 됐더라도 의료나 다른 인도적 지원을 함께해 나가면서, 모로코 현지의 피해가 더 커지질 않기를 기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