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44%나 겪은 임금체불... 70% "솜방망이 처벌 탓"

입력
2023.09.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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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생산직 임금체불 경험
정규직·사무직 비해 10%p 높아
"반의사 불벌죄 폐지해야" 26%

당정이 임금체불 근절을 강조하며 단속 강화와 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절반 가까운 직장인이 임금체불을 경험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1~6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3.7%가 임금체불을 경험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일터 약자인 비정규직(49.0%)과 생산직(51.5%)의 경험 비율이 정규직(40.2%)과 사무직(39.8%)보다 약 10%포인트 높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비례)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임금체불 신고액은 8,231억여 원으로 지난해 동기간 대비 26.8% 증가했다.

설문에 응한 직장인 3명 중 2명(66.0%)은 한국 사회의 임금체불 문제가 심각하다고 봤고, 발생 원인으로 '임금체불 사업주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아서'(69.9%)를 선택한 사람이 '사업주가 지급 능력이 없어서'(23.6%)를 택한 사람의 3배 수준이었다.

임금체불 해결을 위한 1순위 대책으로 '반의사 불벌죄 폐지'(26.7%)가 꼽혔다. 반의사 불벌죄란 피해자가 합의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히면 가해자를 기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당초 피해자에 주도권을 줘서 밀린 임금을 조속히 받을 수 있게끔 하려고 도입된 조항이었으나, 갈수록 가해자에 대한 면죄부로 악용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직장갑질119는 "임금체불을 저지른 사용자가 되레 '체불임금 중 일부만 받겠다고 하면 돈을 빨리 주겠다'는 황당한 합의안을 제시하고,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피해자들이 수용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책으로는 '3년에서 5년으로 임금채권 소멸시효 연장'(18.9%), '임금·퇴직금에 적용되는 체불임금 지연이자제를 모든 임금체불에 적용(14.2%), '국가가 사업주 대신 일정 범위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대지급금 제도 확대'(13.3%) 등이 꼽혔다.

고용노동부는 25일 법무부와 합동으로 임금체불 근절 담화문을 발표할 예정이며, 추석 연휴를 앞두고 현장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과도 관련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직장갑질119는 "전국적 기획 감독은 필요하지만 지속할 수 없는 임시 대책에 불과하다"며 "정말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의사 불벌죄 폐지, 임금채권 소멸시효 연장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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