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이 최근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초과학 연구는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긴 호흡으로 지원하는 게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금의 소극적인 투자가 한국 과학계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5명의 노벨상 수상자들과 비다르 헬게센 노벨재단 총재는 24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스웨덴 노벨재단 산하 노벨프라이즈아웃리치(NPO)가 공동으로 개최한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 행사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번 행사는 노벨상 시상식(올해는 12월 10일) 전후 스웨덴에서 개최되는 학술행사의 해외 부문으로, 한국에서 진행된 것은 2017년 이후 두 번째다.
이날 모인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R&D 예산 삭감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조지 스무트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는 "기초과학 발전은 장기 투자가 가능한 정부의 지지가 중요하다"면서 "새로운 발견이 상품화하고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듯, 기초과학에 투자하면 100배 넘는 결과물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201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마이클 래빗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도 "예산 삭감은 결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 미래에 중요한 건 교육,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특정 분야에 집중한 지원도 경계 요소로 지적됐다. 2017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요아킴 프랑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정부 투자가 압력으로 작용해 특정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면서 "모든 과학자들이 가설을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끔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다르 헬게센 노벨재단 총재는 한국의 정치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선 언급을 피하면서도 "과학·교육·연구 분야에서 장기적인 투자와 국가별 성공사례 배출은 상관관계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 수만 보더라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면서 "경제적 상황 등 변수를 감안해야겠지만, 과학에 대한 투자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석학들이 타국의 정책과 관련해 한꺼번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나 '네이처'도 정부의 R&D 예산 삭감을 심도있게 전하는 등 한국 과학계의 상황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네이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눈에 띄게 급증했던 한국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을 10.9%가량 삭감하기로 하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혼돈에 빠졌다"면서 "과학자들은 정부가 어떤 소통의 노력도 없이 예산을 삭감했고, 여전히 주요 내역은 모호하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