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 시대가 막을 내린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선 벌써부터 대법원장 공석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후임으로 지명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가 언제 표결할지 알 수 없고, 부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도 작지 않은 탓이다. 안 그래도 '재판 지연' 등 곱지 않는 시선을 받고 있는 법원 운영에 대형 악재가 더해지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2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치렀다. 임기는 24일까지다. 그는 퇴임사에서 재판 지연 문제 해결과 사법부 독립 수호를 강조하면서 "훌륭한 신임 대법원장님과 법원 구성원 여러분이 '좋은 재판의 길'을 실현하는 여정을 계속해 주시리라 굳게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의 바람은 실현되지 않을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후보자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전날 이 후보자 임명 동의보고서를 채택하고도 본회의에서 표결은 하지 않았다. 여기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로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총사퇴하면서 25일 본회의 표결마저 불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1993년 김덕주 전 대법원장 사퇴 후 30년 만에 대법원장 공석이 현실화한다.
향후 일정도 장담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추석이 지난 10월 초 본회의 개최를 검토하고 있지만, 민주당 사정에 따라 이 또한 미뤄질 수 있다. 다음 달에는 국정감사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민주당이 "언제 투표해도 부결"이라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경우다. 부결이 확정되면 후보자 지명, 청문회 등의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해 아무리 빨라도 11월은 돼야 후임 자리가 채워진다.
대법원장 부재가 몰고 올 충격파는 생각보다 세다. 전원합의체, 소부 선고 등 대법원 재판부터 지장이 생긴다. 법원조직법에 따라 선임대법관인 안철상 대법관이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지만, 대행 역할에 전원합의체 재판장이 포함되는지 견해가 엇갈려 전원합의체를 열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원합의체가 다루는 사건 중요도를 감안할 때 대법원장 부재 상황에서 심리나 선고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안 대법관이 권한대행 자격으로 사법행정 사무를 처리하면 소부 선고에 참여하기가 여의치 않고, 나머지 재판부의 부담이 커져 재판 지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내년 1월 1일 퇴임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 후임 후보자 제청이나 내년 2월로 예정된 법원 인사 등 사법행정에도 줄줄이 여파가 미친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부결이 확정적이라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법원 신뢰가 이렇게까지 떨어졌나라는 자괴감이 든다"며 "추석 이후에라도 가결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