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문화는 지난 20여 년간 빠른 속도로 성장을 향해 달려왔다.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문화 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목표가 된 문화 콘텐츠의 수출은 2010년대를 기점으로 나날이 증대 중이다. 한국 대중문화가 숙원으로 여겨왔던 국제 시상식 수상도 봉준호 연출의 영화 '기생충' 같은 작품이 쾌거를 거두며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모든 분야가 성장만 한 것은 아니다. 독립·예술영화, 인디음악 등 문화의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대중문화의 '뿌리 예술'은 도리어 고사 위기에 놓여 있다. 2016년 이후로 독립·예술영화 평균 관객 수는 매년 줄고, 비슷한 시기를 기점으로 인디음악을 시도하는 뮤지션의 수도 급감하고 있다. 이들이 공연할 수 있는 라이브클럽도 홍대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과 맞물려 속속 줄어들고 있다. 1990년대 데뷔한 A밴드는 활동 중심지를 아예 일본으로 옮겼다. 생존하기 위해 해외로 떠나 고군분투하는 이들까지 등장한 것이다. 한국은 비슷한 경제 규모를 지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대중문화 뿌리 예술 산업의 현실이 열악하다.
역설적으로 이는 한국 대중문화의 급격한 성장이 만든 하나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문화 자본은 효율적인 이윤 창출이 가능한 장르에 좋게 말하면 ‘선택과 집중’, 나쁘게 말하면 ‘몰빵’을 감행했다. 정부는 이러한 자본의 행동에 경종을 울리는 대신 빠르게 해외에서 매출을 쌓아가는 모습에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스크린 독과점처럼 묵과할 수 없는 수준으로 문제가 악화하면 가까스로 움직이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정부의 문화 정책 기조는 시장 확대와 수출이었고, 모로 가도 문화 산업의 시장을 키우고 수출액을 늘리면 되는 게 그 기조의 중심이었다.
분명 한국 대중문화의 전체적인 파이는 커졌다. 그러나 시장성과 효율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중문화는 지금 당장 잘 나갈 수 있는 일부 장르 이외를 불모지로 내몰았다. 서울에 모든 자원이 집중된 사회 구조는 대중문화의 '서울 중심화'를 심화시켰다. 그 결과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다 할 대중문화 창작도, 발표도, 향유도 어려워진다. 한국 대중문화의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정작 그 속은 텅텅 빈 공갈빵과도 같은 모습이 된 것 같은 이유다.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문화예술인의 요구로 각종 지원책이 등장했다.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설립 이후 꾸준히 진행 중인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제작 및 유통 지원 사업이나 지역 영화 활성화 사업 그리고 2022년부터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 개정되어 본격 추진 중인 지역 서점 활성화 사업이 대표적인 지원책이다.
그러나 문화 균형 발전을 위한 이런 안전망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내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에서 지역 영화 활성화 사업 예산 12억 원과 지역서점 활성화 사업 11억 원이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지역서점 활성화 사업 예산을 "지역서점의 주문·배달을 도와주는 앱 개발 등 디지털 도서물류 지원"으로 돌렸다고 설명했지만, 이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역 서점의 위기가 유통망의 문제일까. 독서 행위와 서점 방문이 줄어들어 생긴 위기 극복을 위해 지역 서점 활성화 사업이 시작된 건데 그 지원책을 유통 체계 현대화로 바꾸는 게 난센스다. 시장에 목을 매어 온 정책이 낳은 문제적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는 움직임을 대체 어떻게 시장 활성화로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2016년 이후로 계속 감소하는 독립·예술영화 관객 수처럼, 주류 이외의 다양한 대중문화를 인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원만으로 거둘 수 있는 성과는 한정적일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업 원상복구 요구에 '시장 활성화'로 대응하는 정부의 주장도 이상한 것은 매한가지이다. 대규모 예산이 투여되는 블록버스터에 거의 모든 자원이 집중되고, 다시 영화 제작 예산을 빠르게 메꾸기 위해 스크린 독과점이 관행이 되어버린 한국 상업영화는 2022년부터 관객이 급감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눈앞에 놓인 큰 시장 밖의 현실을 내다보지 못하는 정부의 문화 정책이 무척이나 불안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