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의 오보에 협주곡

입력
2023.09.23 04:30
19면
음악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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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에서 조율의 기준이 되는 악기는 뭘까요. 각각 다른 음높이를 갖는 다종다양 악기들을 동일한 음높이로 통일시키는 역할은 오보에(Oboe)가 맡습니다. 악기의 조임새가 단단해 음정 변화가 들쑥날쑥하지 않고, 비음이 섞인 독특한 음색이 다른 악기와 확연히 구별되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다음 달 17일, 오보에와 관련된 중요한 음악적 사건이 일어날 예정입니다. 지구 최정상 실력을 갖춘 오보이스트가 역사상 가장 난해한 협주곡을 들고 한국 무대에 오릅니다. 베를린필 오보에 수석인 알브레히트 마이어가 국립 심포니와 함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대개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의 총주로 거대한 음향을 뿜어내며 시작하지만, 이 곡에선 오보에가 초장부터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내며 등장합니다. 특히 1악장 첫머리는 모든 오보이스트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악명 높은 악구인데요. 무려 56마디나 연속해서 연주하는 긴 프레이즈 때문이죠. 이때 오보이스트는 들숨과 날숨을 동시에 다루는 ‘순환 호흡’ 기법을 활용합니다. 뺨을 풀무처럼 부풀리고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악기에 공기를 불어넣으면 오랫동안 소리가 끊이지 않고 연주할 수 있거든요. 협연자 입장에선 무대에 적응할 시간 없이 시작부터 초인적 호흡을 거듭하며 난공불락의 악상을 다뤄야 하니 두려운 곡일 수밖에요.

이 협주곡은 독일 후기 낭만주의의 거장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81세에 작곡한 만년의 작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슈트라우스는 전쟁의 혼란을 피해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전쟁에 승리한 미군이 마을에 들이닥칩니다. 군대가 주둔할 저택을 물색하다 슈트라우스 집 문까지 두드렸다는데요. 슈트라우스는 이렇게 당당히 외칩니다. “나는 장미의 기사, 살로메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다!”

다행히 미군 중엔 작곡가를 알아본 군인이 있었습니다. 피츠버그 심포니에서 오보이스트로 활동했던 존 드 랑시(John de Lancie)는 위대한 작곡가에게 예우를 갖추며 생필품까지 제공합니다. 그리고 작곡가를 유혹합니다. “당신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오보에가 특히나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데, 아예 협주곡을 작곡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은 이렇듯 전쟁 끝 무렵, 미군 장병과의 인연으로 태어났습니다. 전쟁의 황폐함, 신체와 정신의 노화에 시달리는 여든의 작곡가에게 오아시스의 위안과 같은 작품이었죠.

음악사에서 가장 어렵기로 악명 높은 오보에 협주곡을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오보이스트의 연주로 감상하시는 건 어떨까요. 10월 17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입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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