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 "핵폭탄", 브로드컴 갑질… 돌고 돌아 과징금 191억

입력
2023.09.21 14:00
16면
브로드컴 갑질 두고 셀프 구제→과징금
삼성전자, 피해 보상 승소 가능성 커져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에 '부품 갑질'을 한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스스로 구제할 수 있도록 한 판단을 뒤집고, 200억 원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브로드컴 제품을 대량 구매해야 했던 삼성전자는 피해 보상을 위한 소송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됐다.

다른 사업자 찾자, 브로드컴 보복

공정위는 21일 삼성전자에 불리한 '부품 공급 장기 계약(LTA)'을 맺도록 강요한 브로드컴에 대해 과징금 191억 원을 부과하는 제재를 내렸다고 밝혔다. 브로드컴은 △와이파이 △블루투스 △통신 주파수 등 스마트기기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사업자다.

건은 스마트폰, 태블릿PC에 들어가는 부품을 브로드컴에 의존하고 있던 삼성전자가 2019년부터 부품 가격이 싼 다른 사업자와 접촉한 게 발단이었다. 브로드컴은 삼성전자가 실제 계약을 체결한 다른 사업자를 두고 '증오스러운 경쟁자'라고 칭하며, LTA를 압박했다.

삼성전자가 LTA를 거부하자 브로드컴은 2020년 2월부터 부품 선적 중단, 구매 주문 미승인 등 보복에 나섰다. 브로드컴이 '폭탄 투하', '핵폭탄'에 비유한 이 조치들로 삼성전자는 당시 주력 스마트폰인 갤럭시 S20 생산을 위협받았다.

결국 삼성전자는 보복 조치 한 달 만인 2020년 3월 LTA를 수용했다. 3년 동안 브로드컴 부품을 매년 7억6,000만 달러어치 넘게 사고, 구매액이 여기에 미달하면 차액을 물어주는 불공정 계약이었다.

공정위 제재에, 삼성전자 반격

LTA는 2021년 7월 종료했지만 삼성전자는 여러 손해를 입었다. 브로드컴 외의 사업자와 체결했던 일부 부품 계약을 파기하고 쓸모 없는 재고를 떠안았다. 또 구매 하한선을 맞추기 위해 딱히 필요하지 않은 보급형 스마트기기용 부품을 사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불이익은 공정위가 과징금을 매긴 핵심 근거로 작용했다.

공정위는 브로드컴 사건 처리 과정에서 매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초 공정위는 지난해 9월 브로드컴이 신청한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했다. 브로드컴이 과징금 등 공정위 제재를 피하는 대신 '상생기금 200억 원 조성' 등 스스로 시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공정위는 올해 1월 브로드컴과 함께 '자진 시정안'을 마련해 최종 의결 기구인 전원회의에 판단을 구했다. 하지만 전원회의 결론은 달랐다. 전원회의는 6월 브로드컴이 삼성전자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진 시정안을 기각했고 이후 제재 절차가 본격화했다. 자진 시정안이 기각당한 건 의결 절차를 도입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이례적 결정이었다.

과징금 부과를 놓고 '결론 뒤집기'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브로드컴이 제시했던 자진 시정안은 결과적으로 거래 질서 개선, 피해 보상 등에서 충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브로드컴은 이번 과징금 제재로 입장이 뒤바뀌었다. 앞으로 예상되는 두 회사 간 피해 보상 민사소송에서 삼성전자는 승소 가능성을 높였다. 브로드컴의 법 위반 행위가 '자진 시정안'이 통과했을 경우와 비교해 더욱 분명해진 셈이어서, 소송 시 무게감 있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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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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