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35년 만에 장기 ‘수장 공백’ 사태가 현실이 됐다. 대법원은 당분간 원장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지만, 업무 범위도 모호하고 한계도 많은 대행 성격상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퇴임을 앞둔 대법관들의 후임 임명 제청부터 전원합의체 및 상고심 재판 지연, 법관 인사 등 난제가 수두룩하다.
과거 사례를 봐도 대법원장 공백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최소 한 달 넘게 걸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길게 대법원장 자리가 비었던 건 1988년이다. 김용철 전 대법원장이 사법파동 등으로 사퇴한 후 후임 이일규 전 대법원장이 취임하기까지 32일이 걸렸다. 당시엔 인사청문회 절차가 없어 그나마 빠르게 혼란이 수습됐다. 그러나 지금은 인사청문회가 필수인 데다, 촘촘한 국정감사 일정까지 짜여 있어 이달 중 본회의 개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둘러 다른 후보자를 지명해도 적어도 내달 중순까지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는 의미다.
사법부 수장의 부재가 몰고 올 충격파는 간단치 않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내년 1월 1일 퇴임하는 안철상·민유숙 후임 대법관 임명이다.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신임 대법관 임명에 관여한 적이 없어 대법원은 통상 2개월 이상 소요되는 선정 절차에 착수하지도 못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전례를 대입하면 이번 주엔 신임 대법관 선정 작업에 들어갔어야 한다"며 "대법관 인사는 물론, 내년 초 정기 법관 인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 그래도 심각한 재판 적체 현상 역시 가중될 게 뻔하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전원(법원행정처장 제외)이 심리에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보류될 수밖에 없다. 권한대행이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할 수 있느냐를 놓고도 견해가 갈리고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중요 판례 등을 변경하는 전원합의체 판결 의미를 고려하면 대법원장 없는 심리·선고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심리 중인 사건은 5건이다.
일반 상고심 재판(소부 선고)도 지연된다. 앞서 대법원은 이 후보자 부결에 대비해 권한대행을 맡은 안 대법관과 사건 배당을 줄이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행정 사무를 처리하면서 다른 대법관과 똑같이 재판을 하기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논의에선 긴급 대법관회의 등을 통해 대법원 내규에 권한대행의 사건 배당 건수를 줄이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 등이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예산 편성 등 사법행정 업무는 현상 유지를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권한대행이 제도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정이나 근거가 없고, 정무적 부담도 큰 탓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권한대행의 업무수행 범위는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기본 사무만 처리한다 해도 뜻밖의 난관에 부닥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새 후보자 지명이 계속 늦춰지는 경우다. 올해 말까지 대법원장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으면, 퇴임하는 두 대법관을 합쳐 3명 자리가 비게 돼 내년 1월 2일부터 김선수 대법관이 권한대행을 맡아야 한다. 대법관 1명이 처리하는 사건 수가 지난해 4,038건에 달한 점을 고려하면, 상고심 사건 적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나빠질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 회의에서 대법관 임명 제청과 재판 지연 대책이 마련될 것"이라면서도 "처음 맞닥뜨리는 일이라 결론이 빨리 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임시 대법관 회의에서도 대법원장 없는 전원합의체 개최 여부를 놓고 대법관들의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대법원장 공백이 다음 달 10일 퇴임하는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후임 지명에까지 여파를 미칠 가능성도 거론된다. 만약 유력한 차기 헌재소장 후보로 점쳐지는 이종석 헌법재판관이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되면 헌재소장 후보도 새로 물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