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치냐, 폐지냐”… 제주들불축제 운명 추석 전 갈린다

입력
2023.09.20 14:59
숙의형 정책개발 원탁회의 마무리 
이번 주내 권고안 발표 후 제출 예정
청구인측 문제 제기 등 진통 전망
시, 존폐 여부 다음주까지 결정

환경훼손과 산불위험 등이 크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면서 존폐 기로에 놓인 제주들불축제의 운명이 추석 연휴 전 결정된다.

20일 제주시에 따르면 전날 오후 들불축제 존폐 여부와 대전환 방향을 토론하는 ‘제주들불축제 도민 숙의형 원탁회의’가 5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날 원탁회의는 들불축제 숙의형 정책개발을 청구한 제주녹색당 측과 피청구인인 제주시 측이 각각 추천한 전문가 4명의 발표와 토론, 도민 참여단의 분임 토론, 전체 토론, 들불축제 존속에 대한 전자투표 순 등으로 진행됐다. 도민 참여단은 들불축제 찬반 균형과 나이, 지역, 성별 등을 고려해 200명이 선정됐다.

들불축제의 운명을 결정할 전자투표는 도민 참여단 개개인별로 무선 전자투표기를 배부해 찬성·반대·제3의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실시했다. 도민 참여단 투표결과는 이날 숙의형 정책개발 운영위원회에 보고됐으며, 운영위는 보고 내용을 토대로 권고안을 작성 중이다. 운영위는 빠르면 이번 주내에 권고안을 발표한 후 제주시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어 제주시는 권고안을 검토한 후 추석 전 들불축제 존폐 여부 등을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청구 측인 제주녹색당이 이번 원탁회의에 참여한 도민참여단의 대표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진통이 예상된다.

제주녹색당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도민 참여단의 50% 정도가 특정 세대에 편중됐다”며 “뒤늦은 예산 편성으로 원탁회의가 시간에 쫓겨 진행됐고, 참여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60대 이상으로 편중되는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히 평일 낮 시간에 진행된 원탁회의는 젊은 세대의 참여 자체를 배제하는 요인이 됐다”며 “특정 성이나 연령대, 지역이 한쪽으로 치우쳐 도민 참여단이 구성된다면 공정하고 균형 있는 토론이 진행되기 어려우며 공론 결과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시 관계자는 연령대별 인구비례에 따라 도민 참여단을 구성했고, 60대가 많기는 하지만 존속·폐지·유보 등 제주들불축제에 대한 입장까지 조사해 도민 참여단을 구성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앞서 강병삼 제주시장은 최근 “들불축제 존폐 여부는 가치 판단의 문제”라며 “원탁회의를 통한 숙의형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 결과대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시의 결정 내용에 따라 또다른 갈등이 예상되고 있다.

제주들불축제는 과거 야초지 해충구제 등을 위해 마을별로 불을 놓던 제주의 옛 목축문화를 재해석한 것으로 1997년부터 개최됐다. 들불축제의 대표 행사인 오름 불놓기는 오름 한 면을 불 태우는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 평균 30만 명이 넘는 관광객과 도민들을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축제장을 찾고 있다. 하지만 2020~2021년에는 코로나19로, 지난해에는 강원·경북 지역 산불로 행사가 취소되거나 변경된데 이어 4년 만에 대면행사로 치러진 올해 들불축제 역시 ‘불’ 없는 축제가 됐다. 전국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정부가 산불경보 3단계(경계)를 발령한 데 따른 조치였다. 이처럼 들불축제가 산불 위험시기와 맞물리고, 기후시대에 역행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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