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 협곡 옌징에서 천년 염전을 일구고 살아온 나시족의 80%는 전통 종교인 동파교(東巴教)가 대신 천주교를 믿는다. 티베트 땅이니 불교 신자가 많지 않을까 싶었는데 놀랄 일이다. 19세기 중반 두 명의 프랑스 선교사가 왔다. 티베트 중심부에서 쫓겨난 도망자 신세였다. 병을 치료해 주며 주민과 사이가 좋았다. 포도 생산이 많자 와인 제조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포교에 성공했고 지금껏 살아남았다. 티베트 땅에서 유일무이한 천주교당이 옌징에 있다.
염전에서 나와 국도를 5분 정도 달리니 바로 보인다. 도로 안쪽 언덕 위에 자리한 아담한 건물이다. 티베트 문양의 창문 앞에 십자가를 새긴 표지판이 있다. 1865년 건축 당시 전설이 적혀 있다. 선교사가 소가죽과 뿔을 이용해 땅과 물을 얻었다. 자세한 방법을 적지 않아 모르겠으나 기적(?) 같은 자랑이다. 지금도 매주 예배를 보며 티베트 말로 번역된 성경을 읽는다. 1949년까지 외국 신부가 거류했고 지금은 티베트인이 미사를 주관한다.
이곳은 티베트의 나시족 땅이다. 본당 벽면에 걸린 십자가가 낯설다. 실내는 흔히 보는 성당이다. 2층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환하게 내부를 밝히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보인다.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를 뜻하는 INRI도 새겼다. 중국어로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라 쓰여 있다. 그 한자만 아니면 이곳이 티베트라 믿기지 않는다. 문화혁명이 훼손하지 않고 놔뒀을 리가 없다. 소의 힘을 빌리지 않고 1980년대에 다시 지었다.
대문에 서니 구름이 고산 봉우리를 휘젓는 모습이 펼쳐진다. 설원의 땅에서 17명의 외국인 신부가 약 90년 동안 미사를 지속했다. 불교와 갈등했고 관원의 박해를 받았다. 추위와 설움을 견디며 포교를 이어왔다. 청나라 말기에는 외래 종교에 대한 반감이 극심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선교활동은 주민 반발에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곳 천주교는 끈질기게 생명을 부지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오성홍기를 내걸고 차마고도의 땅에 생존했다.
다시 길을 떠난다. ‘길’은 ‘길다’에서 파생된 단어일까? 차마고도에서는 왠지 그렇게 느껴진다. 여행가에게는 끝도 없는 길이다. 국도는 다시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한다. 30분 정도 지나 퉈쯔라(托子拉) 쉼터에 정차한 후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 멀리 구름에 가린 설산이 보이고 수풀 우거진 마을도 여기저기 드러난다. 틈새를 비집고 난창강도 자태를 내비친다.
자전거 10여 대가 열심히 올라오고 있다. 페달을 멈추고 숨을 헐떡인다. 한 달 일정으로 라싸까지 간다는 대학생 팀이다. 방학을 이용해 로망이던 티베트 여행을 단행했다. 왜 굳이 자전거여행을 하느냐 물어봤다. 정신 수양에 도움이 되며 체력이 될 때 경험을 쌓고 싶다는 야무진 대답이 돌아왔다. 나이 들면 하기 힘들다는 말로 들리니 부러울 따름이다. 연락처를 주고받고 기념사진을 남긴다. 무사히 도착하라고 격려하니 아들이라도 된 듯 좋아라 한다. 인연은 이렇게 길 위에서도 맺는다.
4,448m의 훙라산(紅拉山) 고개를 넘으니 평탄한 길로 접어든다. 난창강 지류가 약간 붉은 토양을 품고 흐른다. 강물은 땅의 영향을 받아 색감을 머금는다. 하늘색과 함께 보니 더 멋지다. 쾌청한 날씨에 쾌적한 공기, 선명한 하늘과 구름이 자꾸 펼쳐진다. 연두와 초록이 섞인 칭커(青稞)가 졸졸 따라온다. 고원에서 자라는 거의 유일한 곡물인 티베트 청보리다. 수확 후 말리고 갈아서 국수나 만두를 만들어 주식으로 먹는다. 최근에는 술 빚는 재료로 인기다. 푸릇푸릇한 청보리 빛깔이 자꾸 눈망울에 맺힌다. 잘 어울린 민가의 담과 밭으로 이끌리듯 다가간다.
대문 앞에 아이 둘이 앉아 무언가 열심히 먹고 있다. 삶지 않은 푸른 콩이다. 입으로 훑어 야금야금 먹는 모습이 신기하고 걱정스럽다. 선뜻 몇 개를 건네준다. 티베트 아이는 말없이 눈빛으로 대답한다. 걱정 말고 먹어보라는 표정이다. 고원에 적응하고 사는 아이라 괜찮지만 배탈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조심스레 껍질을 벗기고 한 알 씹었다. 곧바로 반성 모드다. 이다지도 달콤하고 싱그러운 맛이라니? 문득 배고픈 시절의 동네 꼬마가 떠오른다. 순박하기 그지없는 티베트 아이가 맛 보여준 선물이다. 다시 길을 떠나며 고개를 돌리니 상큼한 콩의 단내가 따라오는 듯하다.
날씨가 조금 변하고 있다.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비도 없이 그냥 지나칠 기세다. 시속 80km로 달리는데 느닷없이 짐 실은 말이 보인다. 그 옛날 마방의 행색은 아니다. 산길을 오가며 짐을 운반할 경우 요즘도 말은 유용하다. 망캉(芒康)이 코앞이다. 평균 해발 4,300m라 한여름에도 덥지 않다. 청년들도 긴 팔 옷을 입고 있다. 옌징에서 3시간 만에 망캉에 도착한다. 티베트 말로 ‘지극히 신비로운 곳’이다.
윈난에서 북진하는 214번 국도를 전장공로(滇藏公路)라 한다. 쓰촨에서 서진하는 318번 국도는 천장공로(川藏公路)다. 망캉은 두 길이 만나는 도시로 십자가의 중심이다. 방금 갈림길 팻말을 봤는데 갑자기 가파르게 꼬부랑길이다. 고갯길을 오르며 돌아보니 하트모양 같은 담장이 보인다. 양을 방목하는 민가다. 담장을 둘로 나눈 이유는 모르지만 양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억지를 부려본다. 슬며시 웃음도 나온다. 계속 치오르느라 힘이 들지만 볼수록 참 예쁘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색다른 풍광이 차마고도 여행의 백미다.
양의 행렬이 풀을 뜯으며 대이동 중이다. 목동은 보이지 않는 여유만만한 행군이다. 드넓은 고원의 밥그릇을 다 차지하고 평화로운 풍광을 선사하고 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줄줄이 이어진다. 온종일 초원을 누비다 하트가 그려진 안식처로 이동하겠지. 식별 색깔이 목 주위를 두르고 있다. 친구를 보고 자기 몸에도 그려진 사실을 알까? 차창으로 들어온 감상 덕분에 소소한 잡념이 생긴다.
르와촌(日瓦村)을 지나자 갑자기 차량이 멈춘다. 앞서 가던 차도 모두 정차한 채 웅성거린다. 릴레이처럼 전달된 이야기로는 사고가 났다. 산에서 흙더미가 쏟아져 도로를 막아버렸다는 전언이다.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마을에 가서 돼지 한 마리 잡고 밤샐 수 있다는 비보까지 등장한다. 농담인데 은근 기대도 된다. 오지에 숙소가 있을 리 만무하다. 노천에서 밤새는 일은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게다가 난창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강변에서 물소리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상상은 겨우 30분 만에 끝났다. 서서히 앞차가 움직인다. 불도저가 S자로 생긴 길을 열고 있다.
주카촌(竹卡村)에서 난창강을 건넌다. 강은 왼쪽에서 따라오다 산길을 오르자 시야에서 사라진다. 대형 화물차에 살짝 가린 교수산장(教授山莊)이 보인다. 비등기행역참(飛登騎行驛站)이라 불린다. 악명 높은 3,911m의 줴바산(覺巴山)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새벽에 떠나는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숙소다. 차마고도에서 아주 험악한 길 중 하나다. 화물차도 만반의 준비를 한다.
지도를 보니 노선이 살벌하다. 오르막길 15km, 자전거로 1시간 24분이라 하지만 얼마나 힘들지 장담하기 어렵다. 차량으로도 30분이지만 회전이 많고 화물차와 겹치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대형 차량이 고장이라도 나면 오도 가도 못하고 고립이다. 다행히도 별 탈 없이 고개에 올라 지나온 길을 쳐다본다. 방금 올라왔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차마고도를 새와 쥐만 겨우 지나는 양의 창자로 비유한다. 말이 다니던 길보다 곧겠지만 ‘창자 같은 국도’라 해도 무방하다. 조바심 낸 만큼 풍광은 훨씬 멋지다. 산 능선이 저마다 서로 다른 색감을 뽐내고 있어서다.
마음을 졸였기에 하산 길은 좀 편하다. 우회전, 좌회전은 변하지 않는다. 거의 1,000m를 하강하니 마을이 나온다. 취덩향(曲登鄉)에 이르자 도랑이 좀 이상하다. 지금껏 본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뜻밖에 너무나 맑은 1급수가 우렁차게 흘러가고 있다. 도랑으로 내려가 세수하고 물장난도 친다. 물가에 핀 야생화도 노랗고 빨갛고 하얗다. 맑은 물을 먹고 피어서 그런지 눈부시게 예쁘다. 꽃 향기가 천상의 냄새인 양 샘솟는다. 물 만난 고기처럼 마음껏 피로를 푼다. 차마고도가 이렇게 청량한 선물을 하사하리라고 예상치 못했다.
물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나 산세도 다르다. 느닷없이 민둥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래는 바위인데 위는 마치 모래로 뒤덮은 착각이 든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형상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뚫어지게 바라본다. 산을 돌아 나가니 초원이다. 도랑은 계속 따라오고 길은 완만하다. 자기 길이니 비키라는 동물 사이를 살살 빠져나간다. 유목민이 사는 집에서는 연기가 솟아오른다. 산세도 완연히 부드럽게 뻗었다. 길이 계속 이렇게 평화로우면 얼마나 좋겠는가?
점점 고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대략 1,000m를 순식간에 오른다. 사람도 차도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깔딱 고개를 향해 가는 기분이다. 둥다산(東達山) 고개에 당도한다. 우선 간판을 보고 놀랐고 금세 감동이 몰려든다. 해발 5,130m라니 믿기지 않는다. 5,008m였는데 새로 실측하니 더 높아졌다. 차마고도 국도에서 가장 높은 고개라는 영광을 얻었다. 간판에 높이를 고친 흔적이 있다. 많은 글자가 있으나 오로지 숫자만 보인다. 그래도 티베트 말로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둥담마(དུང་མདམ་)라 읽고 그 뜻은 ‘생명 금지 구역’이다. 길이 생겼으나 이름을 바꿀 필요는 없다. 타르초도 최고의 바람 속도를 감내하고 있다.
해가 지는구나 싶다가 산을 넘으니 다시 하늘이 푸르다. 예측이 어려운 날씨라 오히려 좋다. 대체로 처음 보는 광경이라 날씨와 무관하게 흥분된다. 다시 1시간을 달린다. 회전하는 방향마다 새롭고 신기한 자연이 돌출되니 피곤이 올 틈이 없다. 쭤궁(左貢)에 도착한다. ‘밭을 가는 편우(犏牛)의 등’이라는 뜻이다. 황소와 야크의 교배로 태어난 수소를 말한다. 등처럼 평탄하고 넓은 곳인가 보다. 옌징부터 260km를 왔다. 한 달 이상 걸리는 차마고도를 순간 이동한 느낌이다. 하나하나 두 눈과 가슴에 꼭꼭 새겼다. 꿈에서라도 고산과 협곡을 넘어가는 말이 돼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