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약자 혐오 가득한 '에브리타임'에 다른 의견을 쓰기 시작한 이유

입력
2023.09.23 04:30
11면

지난해 6월,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2학기 '사회문제와 공정' 수업계획서에 이목이 쏠렸다. 대학생의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을 직격하며, 오늘날 이들의 '공정감각'을 성찰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은 수업계획서는 온라인 공간에서 화제가 된 것은 물론 여러 언론매체에도 보도됐다.

이 대학 학생 3명이 민주노총 소속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집회의 소음이 수업권을 침해한다며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 계기. 에타에는 청소노동자의 월급과 처우가 넉넉하다며 "아르바이트를 해도 월 200만 원도 못 받는 우리는 개그지새끼냐?"며 고소인을 지지하는 여론과 노동자를 비난하고 비아냥거리는 표현이 넘쳐났다. 추천사에서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대학의 죽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일갈한다.

'능력 있고 노력한 사람은 승자가 되어 보상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능력주의가 횡행하고, 거짓과 가짜가 진실과 사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지성주의가 만연한 에타라는 공간을 민주적 담론장으로 바꿀 수 있을까. 책은 이 불가능해 보이는 질문에 도전한 '사회문제와 공정' 수강생들의 한 학기를 담은 수업 보고서이자, 유독 약자를 향하는 청년세대의 '공정감각'을 동 세대의 눈으로 성찰하는 생생한 기록물이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수업 과제는 '에타에 글 쓰기'. 노동, 파업, 학벌주의, 페미니즘, 계급주의, 비거니즘, 장애 등 사회 쟁점에 대한 '다른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기득권과 주류 정서에 의탁하는 에타에 균열을 내려 했다. 물론 이 글들은 곧바로 '썰렸(다수의 신고를 받아 삭제되는 것)'다. 자꾸 삭제되니 선생과 학생들이 작당하고 이를 책으로 '박제'해 버렸다. '지성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의 잃어버린 이름을 이 수업이 이뤄진 교실에는 감히 붙이고 싶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