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미아 리 소렌슨은 지난해 한국을 찾아 충격적인 '입양의 비밀’을 알게 됐다. 소렌슨은 입양 기록을 토대로 "1987년 출산 예정일보다 먼저 태어난 그를 생물학적 부모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입양시켰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렌슨이 어렵게 찾아내 만난 부모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소렌슨이 사산된 줄 알고 평생을 살아왔다”는 것. 출산 도중 기절했다 깨어난 어머니에게 병원 관계자가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인신매매나 다름없다”고 소렌슨은 말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의 해외 입양 실태를 재조명했다. 입양된 한인 12명을 인터뷰하고 최근 기밀이 해제된 미국 정부 문건을 분석한 결과 등을 바탕으로 “한국의 부패한 입양 시스템은 최근까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한국은 2021년 기준 콜롬비아, 인도, 우크라이나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해외 입양을 많이 보낸 국가"라는 것이다.
6·25전쟁 직후 한국 정부는 취약 지대 아이들을 돌보는 대신 해외로 '수출'했다. 주한미군과 한국 성노동자가 낳은 혼혈아, 고아, 한부모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 등이었다. 1965년 한국 여성과 흑인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미키 우 플리펜은 어린 시절 이웃에게 당한 인종 차별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는 10대 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미국 오리건주(州)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NYT는 “1960년대 후반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이는 대부분 한부모에게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이 아이들은 또 다른 편견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복지 비용이 아까웠던 정부는 해외 입양을 활성화했다. 입양 절차를 간소화했고 홀트아동복지회 등 민간기관 4곳에 입양 업무를 위탁한 뒤 입양 수수료를 기관이 챙길 수 있도록 했다. 1980년대 입양아 1인당 입양비·수수료는 4,500~5,500달러로 1인당 평균 국민소득보다 많았다.
NYT는 한국 국가기록원 문서를 인용해 "입양기관들은 (더 많은 입양아를 확보하기 위해) 고아원과 병원 등에 현금과 선물을 나눠 줬다"고 전했다. 아동을 항공편으로 '배송'하는 시스템도 개발됐다.
이 과정에서 소렌슨 같은 불법 입양 피해자가 발생했다. "서류에는 ‘고아’로 적혀 있지만 생물학적 어머니와 시장에 갔다가 납치된 기억이 난다", "삼촌이 내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나를 덴마크로 입양 보내면서 이름을 비롯한 정보를 날조했다는 사실을 30년 뒤에야 알게 됐다" 같은 증언이 NYT에 실렸다.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의 피터 뭴러(한국명 홍민·49) 공동대표는 “1970~1990년대 덴마크로 한국 아이들이 대거 입양되는 과정에서 뇌물수수, 서류조작, 입양아 신원 세탁, 입양 강요 등 불법행위가 발생했다”며 한국 정부의 본격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지난해 12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해외 입양 인권침해 조사를 시작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대체로 무관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