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대출 비율 안 지킨 은행, 5년간 제재받은 금액 '12조'

입력
2023.09.19 04:30
16면
중기대출 비율 평균 준수율 53%
제재 강화하기엔 은행 건전성 우려
"실효성 뒷받침할 제도 병행해야"

시중은행의 중소기업대출을 장려하기 위한 한국은행 제도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자금 조달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한은이 중소기업대출 비율을 지키지 못한 시중은행과 지역은행에 부과한 제재금은 총 12조2,630억 원이었다. 이 중 올해 상반기 부과된 제재금은 이미 1조 원을 넘겼다(1조3,720억 원).

중소기업은 주택을 담보로 제공하는 가계와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 대비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다.1 한은이 1965년부터 매달 은행 원화자금대출 증가액 중 일정 비율을 중소기업 몫으로 돌아가도록 대출 비율을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권고에 불과해 5년 6개월 동안 대출 비율을 지킨 은행은 절반 수준(53.1%)에 불과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시중은행에 할당된 중기대출 비율은 45%, 지역은행 60%, 외국은행 지점 25%였다.2

비율 지키는 은행이 적은 이유

시중은행은 ①"매달 대출 비율을 맞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한다. A 시중은행 중소기업대출 담당자는 "거액의 대기업대출을 취급해야 하는 달이 있는데, 이때는 평소처럼 중소기업대출을 공급해도 비율이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정부 부동산 정책에 따라 가계 주택담보대출 수요도 시시각각 천차만별"이라고 설명했다.

②제재 체감도도 낮은 편이다. 한은은 대출 비율을 못 맞춘 은행에 '수출 중소기업에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돈(무역금융 지원액)'을 차감한다. 즉, 5년여간 은행이 날린 무역금융 지원액이 12조 원 이상이라는 뜻이다. B 은행 담당자는 그러나 "현재 한은 제재로 인해 은행의 무역금융 지원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는 않고, 상당 부분 은행이 감내 가능한 상황으로 판단된다"며 "은행마다 무역금융 수요가 달라 제재 예민도도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 비율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은 학계에서 꾸준히 지적돼 왔다. 2017년 국정감사 때도 "직접적으로 강제하거나 미달 은행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강제할 경우 은행 대출 건전성 관리에 부담이 되는 데다, 한은은 감독당국이 아니기 때문에 강하게 제재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6년 전 국감장에서 이주열 당시 한은 총재도 "중대한 제재를 가하고 자금 지원을 끊을 경우 은행 자금 조달 운영의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중기대출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이에 중소기업대출에 따른 건전성 부담을 완화해 주는 제도를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럽연합(EU)에서 시행 중인 '중소기업 지원팩터'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은행은 위험 부담이 큰 대출을 제공할수록 자기자본을 많이 쌓아야 하는데3, 중소기업대출 때는 쌓아야 하는 자본금을 약 24% 정도 절감시켜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부담을 줄여주자는 내용이다.

1 중소기업은 주택을 담보로 제공하는 가계와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 대비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특히 지난해엔 금리인상기까지 겹치면서 중소기업의 63.1%가 필요자금의 40%이하만 겨우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2 올해 상반기까지 시중은행에 할당된 중기대출 비율은 45%, 지역은행 60%, 외국은행 지점 25%였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4월 회의에서 시중은행과 지역은행의 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7월부터 중소기업대출비율을 50%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외국은행 지점은 25%로 종전과 동일하다.
3 은행은 위험 부담이 큰 대출을 제공할수록 자기자본을 많이 쌓아야 하는데
은행은 경영 건전성 지표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사용한다. BIS 비율은 은행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대출, 유가증권 투자 등 손실 입을 위험이 있는 자산)으로 나눠서 구한다. BIS는 은행에 이 비율이 8%를 넘길 것을 권고한다. 즉 BIS 비율을 맞추려면 위험가중자산이 많을수록 자기자본을 많이 쌓아야 한다.
윤주영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