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의 전략적 후퇴? '망 사용료 3년 분쟁' 일단 마침표 찍었지만

입력
2023.09.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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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넷플릭스가 제기한 소송
1심서 SKB 승소, 항소심 진행 중
망 이용대가 지불하는 방향으로 합의한 듯
넷플릭스와 SKB 소송 합의로 종결
SKB, 넷플릭스와 공동 마케팅 진행 계획


전 세계 정보통신(IT) 업계가 주목했던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소송이 3년 만에 합의로 끝났다. 막대한 가입자를 무기로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빅테크 기업에 '망 사용료'라는 이름의 대가를 요구한 소송이었다. 미국, 유럽 등 각국에서도 빅테크와 통신사의 관계를 다시 쓸 수 있을 만큼 큰 관심을 보여왔다. 두 회사의 갈등이 합의로 봉합됐지만 빅테크와 통신사 및 정부 사이의 첨예한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SK텔레콤·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는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코리아 오피스에서 고객 편익 강화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양측은 이번 파트너십을 계기로 모든 분쟁을 종결하고 미래 지향적 파트너로서 함께하기로 뜻을 모았다.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줬는지, 지불했다면 얼마인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업계에선 넷플릭스가 수백억 원을 지불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 불리해지자 돌연 합의…합의 내용은 비공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갈등은 2019년 시작했다. ①막대한 트래픽을 쓰는 넷플릭스 때문에 망 운영에 부담을 느낀 SK브로드밴드가 사용료를 달라고 했지만 응하지 않자 ②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정(중재) 신청을 냈다. ③2020년 4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를 거부한 넷플릭스는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2021년 6월 1심에서 패소했다. 넷플릭스는 즉각 상소했으며 ⑤SK브로드밴드도 구체적 망 이용대가 지불 금액을 결정해 달라며 2021년 9월 '부당이득 반환' 반소(같은 소송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새로운 청구)를 제기해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동안 통신사와 국내 콘텐츠 업체들은 당사자 간 계약에 따라 망 사용 대가를 주고받아 왔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통신 가입자들이 통신 요금을 내는 만큼 콘텐츠 업체가 망 사용료를 낼 이유가 없다며 버텨왔다.

업계에서는 그런 넷플릭스가 1심에서 이미 망 사용료를 낼 이유가 있다는 재판부의 결정이 나왔고 항소심 역시 자신들에게 불리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합의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7월 항소심 재판부가 SK브로드밴드의 주장을 받아들여 국책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망 사용료 감정을 맡긴 것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는 재판부가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은 인정했고 그 액수를 따져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입장에선 콘텐츠 업체가 트래픽 사용량에 따라 통신사에 얼마의 대가를 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세계 최초로 공개될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전 세계 통신사와 빅테크 플랫폼 기업이 이번 재판을 주목한 이유였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칫 이번 재판 결과가 선례가 돼 전 세계에서 망사용료 분쟁이 일어날 수 있었다"며 "넷플릭스는 전략적으로 당사자 간 합의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국회에서 법안 제정이 논의되는 만큼 입법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협상을 추진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국회엔 빅테크 등 인터넷 사업자의 망 사용료 계약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8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SK브로드밴드는 긴 시간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분쟁을 벌이며 생긴 소송 비용 등 부담을 덜게 됐다. 또 다른 회사와 비교해 넷플릭스 콘텐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고객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회사는 파트너십을 통해 SK브로드밴드 고객이 스마트폰·인터넷(IP)을 통해 좀 더 편하게 넷플릭스를 시청하고 결제하게 하고 번들 요금제 등 다양한 상품을 제공할 계획이다.



구글은 여전히 '버티기'…이제 공은 유럽으로


전문가들은 그러나 통신사와 플랫폼 사이의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여전히 구글은 통신사에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있다. KT, LG유플러스 등 다른 통신사들도 넷플릭스에 또 다른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유럽은 최근 넷플릭스를 비롯한 플랫폼 기업을 향해 강도 높은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세계통신사업자연합회(GSMA)가 서울에서 연 '모바일360 아시아태평양'의 망 사용료 관련 토론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리세 푸르 유럽통신사업자협회(ETNO) 사무총장은 "유럽연합(EU)은 1년에 550억 유로(약 78조7,000억 원)를 통신망에 투자하고 있는데 빅테크의 투자액은 10억 유로뿐"이라며 "빅테크는 통신망 투자에 공정한 기여 없이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기가비트 연결법(Gigabit Connectivity Act)'을 제정할 예정인데 트래픽을 5% 이상 만들어내는 빅테크에 통신망 투자 비용을 나눠 내게 하고 의무적으로 협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는다.

익명을 요구한 미디어 학계 관계자는 "빅테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각국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이들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소송이 불러온 유럽의 빅테크 법안이 더 주목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