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명 넘는 사망자를 낸 하노이 아파트 화재 이후 베트남 정부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구조의 건물이 주요 도시에만 4만 개 넘어 속수무책이라는 우려가 비등하다. 시민들은 불안에 떨며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17일 VN익스프레스 등 베트남 언론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서민 주거 시설 소방 시스템을 조사하고 있다. 주택건설부는 소형 아파트 화재 예방·소방 기준을 재정비하고 조만간 새로운 규정을 마련하기로 했고, 공안 당국은 아파트에 소방법 위법 사항이 있는지 살피고 적발 시 엄중 처벌할 방침이다.
지난 13일 탄쑤언 지역 10층짜리 소형 아파트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화재로 주민 150여 명 중 56명이 목숨을 잃었다. 60명이 숨진 2002년 호찌민 국제무역센터 화재 이후 20여 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사고다.
아파트 출입구가 하나뿐인 데다 외부에 비상계단이나 사다리 등 대피시설이 없어 대규모 인명 피해로 번졌다. 동 사이 간격이 2m에 불과할 정도로 좁고 긴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데다 좁은 골목이 끊임없이 이어져 소방차 접근이 어려웠다.
문제는 베트남 주요 도시에 비슷한 구조의 거주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하노이 전력 공사와 호찌민시 공안 조사를 종합하면, 하노이에는 유사한 소형 아파트가 2,000여 채, 호찌민에는 4만2,000여 채가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경제 성장과 함께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거주 인구가 증가하자 소형 주거시설도 우후죽순 늘어난 탓이다. AFP통신은 “하노이와 호찌민은 1㎢당 각각 2,398명과 4,363명이 거주하는 등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라며 “베트남 정부는 높은 주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2014년 소형 아파트를 합법화했다”고 설명했다.
탄쑤언 아파트 화재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불법 증축과 느슨한 관리·감독이 부른 인재라는 사실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공안 조사 결과, 아파트 소유주 응히엠꽝민(44)은 2015년 6층 규모로 아파트 건축 허가를 받았지만 이후 네 개 층을 무단으로 올렸다.
베트남 소방구조협회 소속 전문가 부이쑤언타이는 VN익스프레스에 “7층 이상의 건물은 화재 예방 진단서와 2개의 탈출로, 화재 진압 장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며 “건물주가 이를 피하려 일부러 7층 이하 주택 건축 허가를 신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중앙정부는 주택 인허가와 안전을 관리·감독하는 지방 당국이 불법 증축 사실을 알고도 눈감아 줬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베트남인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탄쑤언 아파트 인근 바딘 지역에 살고 있는 꽝(33)은 한국일보에 “끔찍한 사건을 접한 뒤 살고 있는 건물에 화재 예방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알아봤지만 소화전도, 호스도 찾아볼 수 없었다”며 “화재 발생 시 탈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도난 방지용 쇠창살을 없애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소방 관련 상품 구매가 급증하면서 간이 소화기 등의 가격이 치솟았다. 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가 화재 원인일 수 있다는 추측이 잇따르면서 일부 아파트는 저녁 시간 전기 자동차와 전기 오토바이 충전을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