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에서 주요 대학의 반도체 등 첨단학과 경쟁률이 자연계열 평균보다 낮았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첨단학과 대신 의대를 택한 결과일 것이다. 실제 주요 대학 의대 경쟁률은 전년보다 상승했다.
13~15일 수시모집 원서 접수 마감 결과 주요 7개 대학의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학과 경쟁률은 16.49대 1이었다. 의약학 계열을 제외한 자연계 학과 평균 경쟁률(19.22대 1)보다 낮다. 반면 이들 대학을 포함한 주요 10개 대학 의대 평균 경쟁률은 45.59대 1이었다. 첨단학과 경쟁률의 3배에 육박한다. 전년도(44.67대 1)보다도 소폭 높아졌다.
의대 쏠림은 합격자 발표 후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다. 의대에 동시 합격한 학생들이 첨단학과 등록을 포기하는 현상은 갈수록 심해진다. 2023학년도 정시에서 연세대∙고려대∙서강대∙한양대 반도체 계약학과 4곳의 추가합격자는 73명으로 모집정원(47명)의 155%였다. 졸업 후 삼성전자∙SK하이닉스 취업이 사실상 보장됨에도 중복 합격자들이 의대를 선택하면서 빈자리를 채우고 또 채우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첨단산업 우수 인재 확보 없이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국내 반도체 인력은 2031년 5만4,000명 부족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올해 첨단학과 정원 1,829명을 늘렸지만 양적 증원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질적으로 우수한 인재가 몰리려면 “정년 없이 안정적인 고소득을 올리는 의사만큼 첨단산업 종사자의 미래가 밝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런데 첨단인재 양성을 말하면서 카르텔을 척결하겠다며 연구개발(R&D) 예산을 싹둑 잘라버리는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는 그런 믿음에 심각한 균열을 낸다. 정작 의대 진학에 성공한 최상위권 학생들은 필수의료는 외면하고 편하게 돈 벌 수 있는 피부과, 성형외과로 몰리는 게 현실 아닌가. 의대 쏠림의 물꼬를 빠른 시일 내에 돌려놓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절박한 자세가 필요하다. 첨단 한국은 사람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