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외선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피부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검버섯·사마귀·점 등으로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방치하기 마련이지만 피부암을 배제할 수 없다. 피부암(비흑색종, 기저세포암, 편평세포암, 흑색종 등)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6년 1만9,236명이었는데 2021년에는 2만9,459명으로 5년 새 40% 이상 증가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오병호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를 만났다. 오 교수는 “흑색종 발병의 환경적 요인으로는 자외선 노출이 주원인으로 지목된다”며 “특히 인공 태닝의 경우 태닝을 시작한 나이가 어리고 자주 이용할수록 흑색종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했다. 오 교수는 피부암을 치료하는 ‘모즈미세도식 수술(Mohs Micrographic Surgery)’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시행하고 있는 권위자다.
-흑색종은 일반인에게 낯선 병명인데.
“흑색종(Melanoma)은 그리스어로 ‘어둡다(melas)’는 말과 ‘종양(oma)’이라는 단어가 합친 것으로 피부 색소를 만드는 멜라닌 세포에서 발생한 암을 말한다. 이 세포가 존재하는 어느 곳이든지 발생할 수 있는데, 피부암 가운데 악성도가 가장 높고 치명적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동양인에게는 손발에 발생할 때가 많아 알아채기 쉽다. 손발에 생긴 단순한 점이거나 손발톱 무좀이라고 여긴 게 생명을 위협하는 흑색종일 수 있다.”
-흑색종이 왜 발생하나.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환경적 요인 가운데 자외선 노출이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인공 태닝의 경우 시작 나이가 어리고 자주 이용할수록 흑색종 위험이 높아진다. 흥미로운 점은 동양인에게서 주로 생기는 흑색종은 햇빛 노출 부위가 아닌 발가락이나 발바닥에 생긴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손발에 작용하는 물리적 자극이나 압력이 흑색종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설은 꾸준히 제시돼 왔다. 세브란스병원 연구진은 이것이 핵막의 불안정성과 물리적 힘에 의한 DNA 손상과 관련 있음을 규명했다.”
-흑색종은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
“대부분 자각 증상이 없으며 평범한 점처럼 보일 때가 많다. 이 때문에 흑색종을 정확히 진단하려면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검은 점이 갑자기 생기거나 이미 있던 점 모양이 불규칙하고 비대칭적으로 바뀌거나 0.6㎝ 이상으로 커진다면 흑색종을 의심할 수 있다. 손발에 생기는 색소 병변의 경우 일반적인 점(Nevus)은 지문의 오목하고 길게 파인 홈 부위에 주로 색소가 있지만 흑색종은 지문 돌출 부위에 색소가 주로 있다. 이런 특징은 10배 확대해 피부 상태를 살펴보는 의료용 현미경인 ‘더모스코프’로 관찰하면 더 뚜렷하다.”
-흑색종은 어떻게 진단하나.
“더모스코프 검사와 조직 검사로 진단한다. 더모스코프 검사는 피부 표면에서 빛이 반사되는 것을 막아 진피 상층 부위까지 확인할 수 있다. 눈으로는 일반적인 점처럼 보이지만, 더모스코프로 보면 흑색종의 특징적인 패턴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조직 검사 여부와 어느 지점에서 시행할지 정한다. 조직 검사는 색소 병변 일부를 절제해 병리 판독에 필요한 표본을 제작해 검사하는 것으로, 해당 표본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암세포 유무를 확인해 흑색종을 진단한다.”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나.
“조기 진단하고 병변을 완전 절제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법이다. 이전에는 주변 정상 피부를 5㎝가량 포함해 절제하고, 손발톱에 발생하면 절단하는 방식으로 수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광범위하게 수술하는 게 환자 생존율에 영향이 없다고 밝혀져 흑색종 두께에 따라 0.5~2㎝의 정상 피부를 포함해 절제하는 방식이 권고되고 있다.
부위에 따라 정상 조직을 최대한 보존하는 수술법인 ‘모즈미세도식 수술’을 적용할 수 있다. 이 수술은 종양 경계를 중심으로 조직을 최소한 제거하고, 제거된 조직의 모든 경계부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남은 종양세포가 있는지 확인한 뒤 봉합하는 수술이다. 이 수술을 시행할 때 병리 슬라이드 제작에 4~5일 정도 걸리며 봉합하지 않고 드레싱으로 유지하며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병변 절제 후 손발이나 손발톱에 발생한 피부 결손은 봉합이 어려운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몸의 재생 능력을 이용한 2차 유합 치료와 함께 피부 이식을 시행하는 게 좋다.
흑색종이 치명적인 이유는 혈액이나 림프계를 통해 빠르게 전이돼 내부 장기에서도 암이 자라기 때문이다. 흑색종이 두꺼울수록 암 전이 확률이 높아 0.8~1.0㎜ 이상이라면 전초 림프절 생검을 실시해 항암·방사선 치료 시행 여부를 정한다. 전통적인 항암제는 치료 성공률이 높지 않았지만 최근 개발된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 등은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흑색종 발병 위험을 줄이려면.
“환자들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피부암을 예방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음식과 피부암의 연관성은 근거가 낮을 때가 많다. 특히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 중인 환자에게 과도한 식단 제한이나 특정 음식에 대한 권고는 오히려 치료 반응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칼로리 섭취 부족으로 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
다만 최근 미국피부과학회지에서 87개 문헌을 조사해 발표한 내용은 참고할 만 하다. 이에 따르면 지중해식 불포화 지방산, 케로틴 종류인 리코펜이 흑색종 위험을 줄인다고 한다. 이 중 지중해식 식단이 주목받고 있는데 생선·채소·당근·감귤류 등의 음식에 풍부한 이소프레노이드가 흑색종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토마토·당근·수박 등 붉은색 과일과 채소에 많이 포함돼 있는 리코펜은 광반응 억제 효과가 있고, 혈소판유도성장인자를 억제해 흑색종에 의해 유발된 섬유세포의 이동과 신호 전달을 줄여 항종양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