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순살 아파트', 즉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철근 누락 아파트의 시공ㆍ설계ㆍ감리를 맡은 회사 대표다. 복수의 회사들이니, 정확하게는 ‘대표들’이다.
'어떻게 누락하게 됐을까'보다 '어떻게 철근을 누락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가 정말 궁금했다. 수백, 수천 가구가 살 아파트를 지으면서, 그 아파트를 지탱할 지하 주차장 철근을 누락시키다니,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 실제로 했다. 그렇게 해도 별일 없더라는 경험치가 쌓여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으나 철근 누락이 확인된 LH 아파트 15곳 중 13곳의 시공업체가 LH 퇴직자들이 임원진으로 있는 전관 업체였다고 한다. 감리회사 또한 LH가 직접 감독하는 5개를 제외하고 10개 모두 LH 퇴직자가 근무하는 회사였다고 한다. 문득 ‘철근 몇 개 정도는 빼도 된다는 경험치가 그들이 관리ㆍ감독 업무를 담당해 왔던 LH에서부터 쌓여왔던 것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그들이 LH 근무 시 관리ㆍ감독했던 건물들은 지금 괜찮은 걸까’라는 염려로 이어졌다. 이 일들이 왜 중간에 걸러지지 못했을까. 철근 누락 같은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가 왜 없었을까. 문제를 제기하면 안 됐거나, 이 정도는 눈감고 가는 게 일 잘하는 것으로 평가받았거나···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을 위해 내 이웃집 철근 몇 개 정도는 빼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린 잘못된 결정이 중간에 걸러지지 못하고, 결국 아파트 붕괴에 이르러서야 견제되고, 감시받는 사회.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들과 함께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삶을 마감한 대전 초등학교 교사가 근무했던 당시 학교 교장이다. 4년에 걸친 괴롭힘에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달라는 교사의 요청을 어떻게 그렇게 계속 무시할 수 있었을까. 그게 용인될 수 있었을까. 또 한 사람은 고(故)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당시, 수중 수색 시 안전 문제로 전투화를 착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올라왔음에도 이를 묵살하고 물에서 빠져나오기 더 어려운 장화 착용을 지시한 임성근 사단장이다. 어떻게 이런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그게 실행될 수 있었을까.
아파트 철근 누락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건설사 대표가, 학내 구성원이 부당하게 고통당하는 일이 있어도 뭉개면 된다고 생각하는 교장이, 사병의 생명보다 윗선이 좋아할 그림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사단장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리더의 자리에 있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사람이 우리 사회 주류가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여 이런 이들이 리더 자리에 올라 잘못된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를 중간에 바로잡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진짜 실력이다. 이런 실력을 갖춘 이들이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풀기 어려운 질문만 가득 안고 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을 꼭 찾아야겠다. 이런 결심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건들을 차라리 마주하지 않는 것이 마음 건강에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