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 주도로 주택·소득·고용 등 광범위한 국가통계 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 감사결과 정책실장 등이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을 압박해 집값 관련 통계 조작이 이뤄진 것만 94회에 달했다.
감사원은 15일 대통령비서실과 국토부 등 통계 조작 과정에서 범죄혐의가 확인된 22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구체적 혐의는 통계법 위반,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으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에 따르면 집값 통계 조작은 장기간, 치밀하게 이뤄졌다. 청와대와 국토부는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4년 5개월 동안 부동산원에 확정 통계가 나오기 전 작성 중인 자료를 불법으로 제공하도록 지시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미확정 통계에 임의의 가중치 적용 △재검토 △변동률 상승사유 소명 △현장점검 등을 요구·지시하는 방법으로 부동산원을 압박, 통계 자료를 조작하도록 했다. 이들은 부동산원의 사전 자료 제공 중단요구를 묵살하고 오히려 제공 범위를 서울 주택 매매에서 수도권(20년 2월)과 서울 전셋값(20년 8월)으로 확대해 영향력을 더 키웠다.
장기간 왜곡된 통계치는 또 다른 조작을 통해 한꺼번에 정상 수치인 것처럼 둔갑했다. 이른바 '현실화 작업'을 통해서다. 이들은 표본 가격이 실제 시세보다 크게 낮다는 신뢰도 문제가 제기되자, 기존 집값을 올려 상승률을 낮추거나 새로 표본 가격을 만들되 상승률이 일정 비율을 유지하도록 조작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아이파크 150㎡ 가격이 2019년 1월 1주차에 23억4,000만 원이었으나 27억 원으로 조작됐고, 그 결과 2주차 변동률이 0%로 나오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통계 조작은 여론을 움직이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이들은 2020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유리하도록 10주간 집값 변동률이 하락하게끔 조작했고, 부동산 대책 발표 전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대책 발표 후 효과가 부풀려 보이게 집중적으로 조작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2020년 7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이 "집값 상승률이 11%"라고 답변한 데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에서 비난 여론이 일자, 김상조 전 정책실장은 "적극적으로 감정원의 우수한 통계를 홍보하세요. 경실련 본부장이 날뛸 때 강하게 반박하라는 말입니다"라며 국토부를 질책했다. 이 밖에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시장을 똑바로 보고 있는 거냐. 수치가 잘못됐다",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뭐하는 거냐"며 국토부를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고, "보도자료에 (아직 발표하지 않은) 정부 발표 감안 시 다음 주 안정효과 내용 부탁해요" 등 구체적으로 압박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날 감사원이 밝힌 수사요청 결과는 최종 감사결과와는 다르다. 감사원 관계자는 "메신저와 문자 내용을 지우는 등 증거인멸 정황이 일부 포착됐고, 통계법의 공소시효가 5년으로 수사 기간까지 감안하면 시간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해 우선적으로 수사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감사결과를 확정,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