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8월 바그너그룹의 용병대장 프리고진을 비행기 폭발 사고로 제거했다. 가을 문턱에 들어서자 “새 친구 두 명을 사귀는 것보다 오랜 친구 한 명이 낫다"며 극동의 독재자 김정은과 전격 손을 잡았다. 우크라이나 전선에 보낼 포탄 100만 톤과 다연장로켓포(MLRS) 등을 확보하기 위해 ‘지각 대장’ 푸틴이 30분 전부터 김정은을 기다리는 이례적인 모습까지 연출했다.
러시아는 평양을 '후방 병참 기지화'하기 위해 갑을 관계 역전도 불사했다. 핵 이외에는 사용할 무기가 여의치 않은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의 재래식 탄약과 야포 등은 우크라이나의 전차 반격을 저지하는 데 필수품이다. 자신의 권좌마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푸틴은 대북 제재로 코너에 몰린 김정은과 '악마의 거래'를 했다.
김정은 역시 경제난과 두 차례의 정찰 위성 실패로 체면을 구긴 상태다. 그런 김정은이 1950년대 중반 김일성의 중소(中蘇) 등거리 외교 전략을 70여 년 만에 재가동했다. 평양은 그동안 베이징의 그늘에서 연명해 왔지만, 전격적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갈아탔다.
북·러의 위험한 군사 밀월(蜜月)의 파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엔 안보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협상장에 나오게 했던 지난 30여 년의 ‘비핵화 접근법’이 유엔 상임이사국 러시아의 이탈로 물거품이 되고 있다. 이는 한·소 수교(1990) 소련 해체(1991) 이후 가장 우려스러운 변화로, 동북아 국제 정치의 판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구소련이 유엔과 핵비확산(NPT) 체제 형성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지만, 푸틴이 판을 깨버렸다. 김정은은 향후 유엔 대북 제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최악의 불량국가가 보안관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법 활동을 전개함에 따라 다른 불량 국가들도 유엔헌장을 준수할 이유가 없게 됐다.
둘째, 한국의 안보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크렘린궁이 밝힌 "(북한과의) 군사기술 협력의 아주 민감한 범주"에는 구체적으로 전투기는 물론 핵·미사일 기술 이전이 포함됐을 것이다. 특히 핵잠수함 기술 제공은 공포 수준이다. 바닷속에서 6개월 정도는 가볍게 작전을 전개하는 핵잠수함은 디젤 잠수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또 항공우주 강국의 기술 지원은 정찰 위성 실패로 궁지에 몰린 북한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위성 카메라가 장착된 미사일 기술의 진화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가 목표물이 된다는 의미다. 북한이 정찰 위성을 실전 배치하면 한반도 전체 동향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어, 기습 핵 타격 능력이 크게 향상될 전망이다. 우리의 킬체인(Kill-Chain·한미 연합 선제 타격 체제) 등이 육·해ㆍ공 세 방향에서 날아오는 북한 핵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전세는 물론 동북아 안보 지형도 심각하게 요동칠 전망이다. 김정은은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면서 '묻지마 러시아 지지'를 선언했지만, 미국의 사전 경고를 무시한 군사 거래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선에 미국의 차세대 전차 '에이브럼스' 등 신무기들이 투입될 예정이며, 동해안에서의 한미 확장억제 군사훈련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불량 스트롱맨’들의 거친 주먹 과시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됐던 유엔 안보리 체제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특히 73년 전 김일성과 스탈린의 야합으로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었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군사 정상 회담이라는 위험한 도박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안보정책과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실효성 있게 가동돼야 한다.